100분토론! 여학생 시민 논객 보시게나.


내 소개를 하자면 그냥 평범한 30대 후반의 직장인이네.
자네와는 띠동갑 이상 나이 차이가 날 것 같으니 존대 생략하고 그냥 편안하게 쓰겠네. 불쾌하다면 용서하게.

백토를 보다가 자네가 이해찬 예비후보에게 질문하는 내용을 듣고 실망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네. 일상이 너무 바쁘다 보니(우리나라 직장인들, 대게 정말 바쁘고 열심히 일한다네^^) 백토 끝나고 바로 글을 못 올리고 이제야 생각을 정리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으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게 되면 인생 선배가 그저 넋두리 삼아 하는 얘긴가 보다 하고 가볍게 읽어 주기를 바라네.

이해찬 후보에 대한 5분 청문회 순서에서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자네가 시민 논객으로 마이크 잡는 걸 보고 예비후보의 교육부장관시절 문제를 질문할 것으로 예상은 하였네.

그런데 내가 자네를 보고 실망스럽고 걱정스러웠던 건 자네가 자네 자신을 스스로 “제가 그 유명한 이해찬 1세대입니다. 단군 이래 최저 학력으로 대학 들어간 세대인데요.”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네.

자네에게 한번 묻고 싶네. 자네가 생각하기에는 자네 세대들이 정말로 대한민국 최저학력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정말 큰일 아닌가?

우리는, 우리 선배들이 그들의 희생과 열정으로 성취해 놓은 토대를 바탕으로, 더 연구하고 더 노력해서 우리나라를 선진국 문턱에까지 이끌어 왔고 앞으로 자네들이 우리나라의 주역이 될 10~20년 후에는 우리나라도 명실상부한 선진국에 진입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네. 그때가 되면 자네들 덕에 우리는 좀 더 편안하고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자녀는 더욱 행복한 환경에서 살게 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단 말일세.

그런데 그런 자네들이 대한민국 최저학력이라니,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자네들을 폄하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네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네. 자네들이 이 사회의 주역이 될 즈음에는 우리나라가 오히려 퇴행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얘기가 아닌가?

자네는 또“하나만 잘하면 대학 들어 갈 수 있다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라고 얘기하더군. 정말로 그랬다면 그건 교육정책이 잘 못돼서 그런 게 아니라, 자네가 정말로 순진하거나 무책임했거나, 아니면 긴 인생의 여정에서 한번쯤 거쳐야 할 수단에 불과 한 ‘대학입학’을 삶 자체의 목적으로 삼은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우선 대학이란 말이야, 한 가지만 잘해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네.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학이라는 서울대가 세계 100위권에도 못 드는 그저 그런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대학은 최고의 교육기관이네. 그런 곳에서 공부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초지식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운 좋게 수능 대박 나서 대학 들어간 자네 또래 학생들이 대학공부를 쫓아가지 못해서 벅벅거리는 거 혹시 보지 못했나?

‘하나만 잘하면 대학 들어갈 수 있다.’라는 말은 소위 강조법이라네.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 연령대, 그 수준에 필요한 정도의 기본 지식은 갖추되 그 외에 자신의 장점과 특기를 살려 두드러지게 잘하는 또는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으면 그것을 잘 살려 충분히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지.

그런데 자네들이 하는 불평들을 보면 ‘하나만 잘하면 대학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해서 야자도 모두 없애고 4시 되면 칼같이 하교해서 놀았는데, 고3 되니까 수능 못 보면 대학 못 가더라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럼 정말 기본도 못하고 대학이라는 데를 가려고 했단 말인가? 우리나라 대학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그 정도는 아니란 말일세.

그리고 말이야, 공부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삶은 좀 더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네. 삶을 좀 더 풍요롭고 윤택하게 한다는 건, 물론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존귀함과 가치를 지키며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면 공부가 적성에 잘 맞아 좋은 성적을 얻어 소위 일류 대학이라는 데에 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남은 삶은 사는데 큰 재산이 된단 말일세.

너무 이상적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나도 수험생이 때는 대학입학이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입시전쟁이라는 전선에서 한발 물러서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공부를 조금 잘하고 못하고 또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못 나오고가 인생의 행복을 좌우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

어찌하다 보니 자네에게 핀잔만 주는 꼴이 되어 버렸는데, 사실 그럴 의도로 얘기를 꺼낸 건 아니고, 난 사실 자네들이 부럽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라네.

이제 자네 세대들이 하나 둘씩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하는 것을 보는데 말이야, 난 자네들의 그 재기 발랄함이 참 부럽다네.

많은 경우를 본 건 아니지만, 자네들은 뭐랄까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정연하고, 무관심한 것 같으면서도 집중력 있고, 세간에서 하는 얘기들처럼 싸가지 없다기보다는 당차고 활발하고, 엉뚱하지만 기발하고, 뭐 하여튼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이지(물론 대책 없고 나약한 친구들도 꽤 있더군. 하지만, 어느 세대인들 그런 친구들이 없었겠나? ^^). 그래서 대략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잘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지.

자네들이 대한민국 최저학력이라는데 동의하지는 않지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학력이 최저이면 어떤가? 요즘 누가 공부 잘한다고 쳐주나? 개성, 창의력, 다른 사람과의 communication 능력, P/T 능력 뭐 이런 게 먹어주는 세상 아닌가?

선배로서 충고하는데, 어디 가서 절대로 대한민국 최저학력세대라고 자신을 스스로 폄하하고 다니지 마시게나. 그보다는 대한민국 최고의 개성세대 또는 대한민국 최고의 창의력세대하고 하고 다니는 게 훨씬 보기 좋단 말일세.



추신: 덧붙이자면, 자네들을 대한민국 최저학력세대라고 비아냥거리는 말들은 실제로 국민의 정부와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의 정책을 좌초시키려는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낸 말이란 말이지.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그다지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거 명심하시게. 대게 일본강점기 때 식민 사관에 기초한 교육정책에 따라 교육을 받은 사람이거든.

<개같은이세상>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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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이 좀 시끄러워서 잠시 나가봤습니다.
한 군중들을 포함해 50여명이 계시더군요.

집회 중계는 다른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티즌들의 피켓내용이나 의견들은 이미 공개된 바와 같습니다만,
전 그 집회를 지켜보는 샘물교회 성도들의 입에 오른 말들을 적어봤습니다.

집회를 지켜보고 있다가, 일반 신도들의 반응을 듣고 있자니 가만히 있을 수 없더군요.


예배가 끝난 후 샘물교회 성도들이 시위를 보면서 던진 말들입니다.

"저저저 저게 뭐하는 짓들이야. 대체 여기까지 와서 저러다니."

"어떠 놈들이 시킨거야. 저것들 다 반미단체들이야, 대사관 앞에서 못하게 하니깐 여기와서 저러잖아."

"거의 다 학생들이네, 애덜이라서 잘 몰라서 저러는거야. 공부안하고 왜 저러나."

"이게 다 언론 호도 때문이라니깐."

"다른 종교 재단들도 다 저렇게 생각하는거 아냐?"

시위자들에게 다가가는 남자에게 여자가
"뭘 더봐 자꾸 봐주면 더 저런다니깐 그냥 가자"

"봐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저러지 군중들 사라지면 10분 안에 정리할거야."

"많은 줄 알았는데, 겨우 20명도 안되네."

집회자들을 향해 화를 내고 욕을 하는 아이에게 부모가 말립니다.
"그렇다고 욕을 하면 안되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교회 건물 안에서 소리칩니다.
"시위 그만해라." "시위 그만해라."


주민 한 분이 나오셔서 집회에 항의하셨습니다.
경찰서에 정식으로 신고한 집회라는 말에 화를 내고는 돌아가셨죠.

교회 관계자의 말도 집회가 문제가 아니라.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니까 그게 걱정이라고 하시네요.

이 말을 들으니 참 난감하더군요. 왜 저 집회참가자들이 시간 쓰고 돈 쓰고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셨는지.. 직접적인 피해를 이미 봤으며, 실망과 분노로 가득찬 국민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의 먼지에 불과한 겨우 30명 남짓의 네티즌입니다.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는게 걱정이시라뇨

아.. 저도 집이 바로 앞인데, 사실 그리 시끄럽진 않습니다. 거기 군중들도 상당수가 주민들입니다. 주민으로서 집회 반대하지 않습니다.

뒤에서 욕을 하시는 샘물교회 사람들도 있었고,말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시선은 냉담하군요. 서로가 말이죠.
분명히 같은 사실을 두고 양쪽이 다른 생각을 갖고있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별다른 말없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오후 2시정도에 네티즌들도 해산한거같구요.

오늘 시위에서 안타까웠던 점 몇가지 입니다.
- 구호를 외친다던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 일치가 없어서 메세지가 정확히 전달되지 못한 점입니다. 개인자격으로 참가하신 분들이니 어쩔 수 없는거지요.

- 장소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주 출입구와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근처 사시는 주민 분들도 왜 구석에서 하냐는 반응들을 보이시더군요. 다들 멀리서오신 네티즌들이시라 주출입문을 모르신 것 같습니다.

여튼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평화적인 시위였음에 분명하고, 몇몇 교회 관계자들이 집회자들에게 다가가서 노려보는(?) 사소한 일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충돌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야 안보면 그만이라는 그들에게 이 사태가 현실임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으리라 봅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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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에 모 식당에서 식사중이였죠.

어느 테이블에서 갑자기

"아줌마 내가 오랬잖아!!"

그넘의 나이는 20대 중반;;

아줌마 - "네 못들었어요 죄송해요"

근데 저도 그 테이블이 옆인데 부르는거 못들었음;;

학생 - "정신 팔고 있으니깐 못듣지.. 벌레 나왔다고!!"

아줌마 - "음식 다시 해드릴께요 죄송해요 깨끗히 하는데 들어갔나 보네요"

학생 -"상추에서 나왔다고!! 됐어 나도 부르면 빨리 오기나해"
"좋게 말할라 했는데 아줌마들이 늦게 왔잖아 부르면 와야지!!"
"식당일 힘든거 알아서 배려하는데 왜 안와!!"

아줌마 - "죄송해요 상추 씻다보면 종종 그래요 죄송해요 음료수 드릴께요 화푸세요.."

학생- " 아씨.. 진짜 알았어요 가봐요 "

....

상추벌레;;;

씻다가 보면 집에서도 나올 수 있는거고요..
조리된 음식에서 벌레가 나왔다면
문제가 있지만...
음음 파리나 바퀴벌레도 아니고;;;

그렇다고 ㅎ해도 어린놈이 아줌마한테;;

참.....

세상이 이래요

<깐죠>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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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간통죄에 대한 논쟁은 도덕적인 의무의 법적인 강제를 두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간통죄 폐지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예를 들면 이번 미디어 다음에 뜬 기사 중

도 판사는 결정문에서 성행위와 상대방 등을 선택할 자기 결정권은 헌법의 인격권과 행복추권에 해당한다며 민사도덕적인 책임에 그치는 간통죄를 범죄 화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짙다고 밝혔습니다.
도 판사는 그러면서 애정이 전제된 성관계는 인간 본능과 내면세계의 자연스러운 발현으로 공적인 제제에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법이 이불 안까지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런즉슨,
1.性的자기 결정권(자유권)과 함께 국가 형벌권이 협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2.형법에 의하여 윤리나 도덕이 강제되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법 영역과 도덕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자는 말과 같다.
또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은 침해받을 수 없다는 말로 간통죄에 대해 은근히 정당화 시키고 있는 셈인 것이다.

윤리는 자율성에 의해 결정되지만 법률은 타율적인 것으로 예를 들어 사마리아인 법이란 도덕적인 의무를 법적인 강제적인 것으로 의무화 시킨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조해 주어야 할 구조의무(Duty to rescue) 혹은 도움을 주어야 할 의무(Duty yo rend aid)를 법으로 정한 것)
이것에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법률로 대표적인 것은 간통죄이다.
이 간통죄와 사마리아인 법과의 공통점은 도덕적 의무를 법률에 의해 타율적으로 규제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간통죄가 존폐되어야 마땅한 것일까?

간통죄가 존재 함으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자유론)에 대한 타격을 논란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론을 존중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질서 유지에는 커다란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이 사회에 존재함으로써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인데 각자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사회에 불균형을 일으킬 자유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건전한 성문화를 위해서는 간통죄가 커다란 주축돌 역할을 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법적으로 결혼을 한 부부사이를 사사로운 성적 자기 결정권을 내세우며 그것을 도덕적인 윤리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법적인 약속을 깨뜨린 데에 대한 변명 구실거리밖에 되지 않으며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가정의 문화질서가 체계적으로 잡혀져 공동체 문화로 이룩해 온 우리나라 안에서는 가정의 보호가 더욱더 중요하다. 그저 부부간의 도덕적 의무를 내세우며 형법에 의한 윤리나 도덕성을 제기한다면 만약 간통을 하게 될 경우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 할 것인지는 이혼으로 정당화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혼은 만무하게 될 것이고 파혼되는 가정이며 청소년들의 방황과 혼란스러워지는 사회의 앞날은 그 누가 책임 질 것인가?
한 걸음 더 물러서서 더 큰 산을 바라보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 앞에 도덕적 의무의 강제라는 명목하는 더더욱 없어야 한다.
하나 더, 간통죄를 폐지하여 도덕적 의무를 주장하는 이들은 법 영역, 도덕 영역의 명확한 구분을 하자는 말과 같다. 만약 그 두 영역을 구분해 버리는 법이 도덕적 정당성이 없어도 무방하다는 결론이 도출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인종학살이나 노예제도 등의 비도덕적 법 규정이 합리화 될 위험이 있게 되어 버린다.
개인의 내면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도 이 사회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법이며 윤리이다.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도덕적 의무가 혼합된 법에 대해 폐지나 위헌 소지를 밝힌다면 사회의 질서는 물론 각 가정과 국가에 미칠 그 여파는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분명히 어느 정도의 법에 대한 도덕적 의무가 섞여야만 진정한 인권존중과 자율성이 보장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Somartrio>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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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가 독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독일에서 비춰지는 기독교 - 그러니까 여기서는 개신교지요 - 는 한국에서와는 너무나도 틀린 모습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프로테스탄트의 원조는 독일입니다. 부패한 카톨릭을 비판한다는 취지에서 출현한 개신교는 그 태생적 특성상 비판정신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비판의 대상에서 개신교 자신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독일 정신계 특유의 지적 분위기가 이러한 비판의 날을 더욱 더 날카롭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의문과 성서에 대한 독일 신학계의 비판적인 연구들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급기야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들을 완전히 붕괴시키기에 충분한 학술적 결과물들을 내놓게 됩니다.

이러한 연구의 중심에 서있던 신학자이자 의사인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쳐 박사는 이 같은 붕괴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내부의 모순적 문제들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 불리는 루돌프 불트만에 의해 기독교의 탈신화화가 진행되면서 이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독일 개신교는 현재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분 중 최근 은퇴하신 고등학교 교사분이 계십니다. 얼마 전 아프간 피랍 문제로 이 분과 얘기를 했었는데, 당신의 형님 얘기를 해주시더군요. 이 분 형님은 카이저스라우터른에 위치한 교회의 목사님인데, 자신의 교회를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면 "그건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 신화적 상징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더군요. 즉 한국 교회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근본주의적 교리를 포기한지 오래라는 얘깁니다.

이 목사님이 혼자 유별난 게 아니라 사실 대부분의 독일 목사님들이 이 분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독일 신학계의 철저하고 비판적인 신학에 강하게 영향을 많은 독일 개신교 교회들과 목사님들은 교회의 존재 이유를 더 이상 신앙 그 자체에서 찾지 않고 사회적 봉사의 차원으로 이해합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독일 개신교는 60~70년대의 학생운동과 80년대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력을 갖고 있어서 한국과는 달리 분위기가 대단히 진보적입니다. 제가 보기에 전도 같은 것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독일에서 기독교는 날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믿고 싶으면 아무거나 믿으면 된다. 꼭 기독교 믿을 필요없다."라고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말씀하시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 인상 깊게 느끼는 것은, 그냥 근본주의적 교리를 펼치면 신도가 떠나지 않을텐데, 이러한 단순한 방법을 놔두고 스스로의 몰락을 자처하는 목사님들의 모습을 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에 대한 추구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해줍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래도 끝까지 근본주의적 교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이른바 '자유교회'라고 불리우는 교회를 다닙니다. 독일은 종교의 강제성은 없지만 국교가 기독교(카톨릭 포함)이고, 교회가 국가소속입니다.

따라서 자유교회라는 것은 국가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교회를 지칭함과 동시에 한국식의 근본주의 교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자유교회 대부분이 기존 교회의 합리적 종교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자유교회를 보는 사회 일반의 시각은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위험천만한 발상을 하는 이상한 종교집단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를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한 대학의 저명한 신학교수가 나와서 말하길, 기독교 근본주의는 그 교리상 민주주의, 그리고 현대 문명과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다는 말을 하더군요.

아프간 피랍 한국인들에 대한 뉴스가 이곳 독일에서도 종종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리 크게 비중을 갖고 다뤄지지는 않지만 몇 주 전 공영방송인 ZDF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평소 보다는 다소 비중 있게 다뤄진 적이 있는데, 전 이 방송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피랍과 관련된 전반적인 상황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앵커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들은 왜 그토록 위험한 아프가니스탄에 자발적으로 갔을까요? 이들은 자유교회 소속의 신도들이었습니다."

전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쓰다 보니 너무 길게 쓴 것 같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고 이것이 세계기독교 전체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노파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의 참 모습은 한국의 개신교와는 참으로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혹시 이미 다 알고 계셨던 내용이라면 송구스럽습니다.^^;;

어찌되었던 기독교는 자기희생과 사랑의 종교이니만큼 이러한 기독교의 소중한 가르침이 어떻게 전파될 수 있을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공감하시면 여러 분이 볼수 있게 추천하시는 센스~


( 자료 수집 차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다음과 글을 만났습니다. 이번 아프간 선교 피납 사건에 대해 독일에서 살고 있는 김준석이라는 재독동포가 쓴 글입니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흥미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윤옥현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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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일때문에 현대차 몇차밴드인지 정확하게 확인이 어려운 사업장의 전무를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오늘 현대차 무분규 임금협상 타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몇군데 나와 있는 것을 봤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장래가 걱정되서 몇마디 해야겠다.

언젠가부터 혁신이라는 말이 온나라에 미친듯이 퍼지면서부터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혁신에 열올리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혁신의 실체를 아는가. 그들이 말하는 혁신의 실체는 하청을 말려죽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혁신이라는 명목으로 하청에 원가절감을 강요한다. 하청에 혁신을 통한 원가절감을 강요하는 것이다. 자본이 딸리고 노동력의 질이 딸리는 하청에서 원가절감의 방법은 하나 밗에 없다. 이전과 똑같이 일하고 또는 이전보다 많이 일하고 이전보다 적게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기업들은 물량을 주지 않는다. 공장을 놀릴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당장은 손실을 감수하면서라도 공장은 돌린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유지될 수 있을까. 안된다. 얼마남지 않았다. 그 얼마가 어느정도인지는 분석할 능력은 안된다. 다만 멀지 않았다고 느낀다. 유지가 안대면 어떻게 될까. 하청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하청이 무너져도 대기업은 안망한다. 중국이라는 노동력의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하청 무너져도 대기업은 중국에서 부품받아서 잘 살아간다. 그러다 경쟁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서는 전을 접고 중국에서 전을 펼꺼다. 기아차처럼 국민들 혈세로 어떻게 어떻게 또 얼마간 유지댈지 모르지만 현재와 같은 구조라면 안된다. 얼마안남았다. 나는 그날이 두렵다. 해고제한으로 짤릴 걱정없는 철방통 대기업 근로자들아. 하청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니들도 얼마 못간다.

자본은 애국심이 없다. 더 많은 이익을 따라 움직일 뿐이다. 너무 무섭고 암담해서 감히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에게 고한다.

얼마 안남았다. 잘해라. 현대차 협상내용보면서 니들도 겁내고 있다는거 봤다. 땡깡부리지 말고 잘해라. 니들 사는 동안은 어떻게 버틸수 있다고 그렇게 자위하지 말고 잘해라. 니들이 받는 월급에 포함되어 있는 니들 하청인들의 피땀을 생각해라. 니들이 월급올려받는거 니들 잘해서 올려받는거 하나도 없다. 하청사람들 피다. 부탁한다. 제발 잘해라.

그냥 답답한 마음에 적은 글로 논리의 비약 등이 있을 수 있으나 오늘 현대차 협상타결 소식을 듣고 드는 제 생각을 감정을 바로 적은 글입니다.

너무 과한 반응들은 안보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하루들 보내세요.

<늑대>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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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기사는 왜 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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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사건에서 보여준 우리 언론의 후진성은 피랍자들이 석방된 후에도 여전하다.
언론의 데스크가 기사로 채택하는 기준도 이해되지 않고 기사로써의 요건조차 불명한 추리가 사실관계를 가리는 기사로 실리는 일도 다반사다.


피랍사건 초기에 인터넷에는 소위 ‘두타스님의 굴욕’이라는 사진이 유포된 적이 있었다.
이 사진은 십자가를 들고 있는 한 기독교인이 부산에서 ‘민들레밥집’이란 간판으로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에게 식사를 봉양하는 두타스님이 지하상가에서 시주를 받고 있는 데 와서 스님의 맨머리를 만지고 흔들며 ‘회개하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찍은 것이었다.
( http://tinyurl.com/2gy4bc )


이 사진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자, 국내의 한 언론은 그 사진을 캡쳐하여 ‘기사화’ 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진은 “탈레반에 이메일… 일부 네티즌,몰상식 행동 물의”라는 제하의 기사에 포함 되었다.
해당 기사의 내용은 <“실제 사진인지 조작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인터넷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이 사진은 피랍자들을 비판하는 일부 여론과 맞물리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로 급속 확산,기독교 전체에 대한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였다.

‘실제 사진’이라면 ‘광신도의 만행’을 규탄해야 응당하고,
‘조작된 사진’이라면 ‘네티즌의 철없는 행동’을 개탄해야 마땅한 사진이었는데,
기자는 왜 그 사진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았을까?

사진의 진위는 두타스님께 연락을 해보면 간단하게 확인 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 사진인지 조작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이라는 면죄부와 함께, 그 사진은 “탈레반에 이메일… 일부 네티즌,몰상식 행동 물의”라는 제하의 기사 속에 들어갔다.
네이버는 그 사진의 기사에 기독교를 비난하는 댓글이 봇물을 이루자 댓글을 폐쇄해 버렸다.

사진을 처음 올렸던 네티즌이 소신을 굽히지 않자 용기를 얻은 다른 네티즌들이 피고발의 위험을 무릅쓴 채 계속하여 그 사진을 이곳, 저곳으로 퍼다 날랐고, 언론의 해당 기사가 악의에 찬 것이라며 맹렬히 성토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그 기사를 썼던 기자는 ‘두타스님의 굴욕’ 사진을 사실로 확인했다며,
<'굴욕' 두타스님 "전생의 잘못인 듯…오히려 제가 죄송">이라는 제하에 두타스님과의 인터뷰 기사를 올렸다.
그 기자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사실관계 확인을 왜 처음부터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9월 3일, 국내 각 언론사와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는 연합뉴스는 열독율이 높았던 두 개의 기사를 제공했다.
뉴욕 특파원이 송고한 “아프간 피랍자 귀국후 안도-분노 동시 직면 <NYT>”라는 기사와,
두바이 특파원이 송고한 “<고침> 국제(피랍자 두바이면세점 명품쇼핑…)”이라는 기사였다.

둘 다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한 것이었지만, 해외 특파원이 보내온 기사였다.

그중 “아프간 피랍자 귀국후 안도-분노 동시 직면 <NYT>”라는 기사는 이번 피랍사건에 대해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판적인 여론을 소개하는 내용이었지만,
우리언론은 안방의 여론을 직접 취재하여 기사를 쓰지 않고 외신의 보도를 인용, 편집하여 보도 하였다.
이는 언론이 통제받던 군사독재시절에 소심한 기자들이 우회적으로 국내여론을 전하기 위해 애용하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그런 시대 상황이 아니고, 또 국내 언론은 이미 자체적으로 취재하여 많이 보도했기 때문에 외신의 반응도 소개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국내 언론은 비판여론을 제대로 취재하여 보도하지 않으면서 외신을 인용 보도했다.



또 다른 하나, “<고침> 국제(피랍자 두바이면세점 명품쇼핑…)”이라는 보도는 기사의 요건이 뭔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기사였다.

기사의 요지는 일부 네티즌이 주장하는 피랍자들의 `명품 쇼핑설'의 근거를 대체로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모두가 근거가 없으니 피랍자들이 두바이에서 쇼핑을 했다는 소문은 사실무근의 헛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의 내용이나 결론을 도출해내는 방식이 당최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이런 기사라면 국내 본사의 기자가 피랍자들에게 물어 보고, 취재해서 쓰면 되지 두바이 특파원의 추리력이 왜 필요했는지를 모르겠다.
두바이에서 쇼핑을 한 적이 있는지, 없다고 한다면 그 면세점 쇼핑백과 신발상표가 있는 쇼핑백을 들고 온 경위는 어떻게 된 것인 지를 물어보고 당사자들의 답변을 들은 다음, 그 경위에 포함되는 관계자들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기사를 쓰면 되지 않겠는가.
피랍 당사자들에게 불리한 소문임에도 불구하고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면, 취재에 응하지 않더라는 사실을 알리고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것만 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사는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내용 보다는 기자의 영특한 추리력이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선글라스는 일부 네티즌의 주장처럼 두바이에서 산 물건이 아니다.”>고 단정하는 근거로,
<“여성 인질의 명품 선글라스는 지난달 31일 석방 뒤 카불의 호텔에서 찍힌 피랍자의 사진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고 했다.
결국 네티즌이나 기자나 똑 같이 사진을 보고 추리를 하는데, 기자의 추리가 네티즌보다 더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것이니 “아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비닐봉투 안에 대사관이 지급했던 노란 아랍식 무늬 쇼핑백이 희미하게 비치는 데 이것으로 미뤄 이 남성인질이 신발을 산 게 아니라 쇼핑백의 줄이 끊어지자 임시로 누군가가 구해 준 이 봉투에 쇼핑백을 통째로 담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쓴 이 기사구절은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대목이라 하겠고, 설령 사실이 아니라 해도 그 놀라운 문학적 자질을 인정해 줘야 할 듯하다.
사실이라면 희미한 사진 한 장으로 “남성인질이 신발을 사지 않았고”, “쇼핑백의 줄이 끊어지고”, “누군가 임시로 봉투를 구해주고”, “그 봉투에 줄이 끊어진 쇼핑백을 통째로 담고”하는 그 모두를 완벽하게 추리한 놀라운 능력을 어느 누가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들을 한국행 비행편 탑승구까지 인도했다는 정부 관계자는 "1일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탑승시간에 빠듯하게 공항에 갔다"며 "여유롭게 공항 내 면세점에서 쇼핑을 할 시간은 물론 돈도 없었다"고 말했다”>는 것도 사실관계를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적어도 ‘시간’과 ‘돈’이 없어 쇼핑은 할 수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졌다면,
기자가 확인해 보니, “피랍자들은 두바이 공항의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와 5분만에 바로 탑승을 완료한 것으로 확인되어 면세점에서 쇼핑을 했다는 소문은 설득력이 없다“든지,
“정부관계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확인 해보니 실제 탑승시간 까지는 30분의 여유가 있었다”든지 해야 좋았고,
‘돈도 없었다’는 말로 쇼핑을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을 할 참이었으면,
‘돈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들은 신용카드마저 억류중 모두 빼앗겼던 것으로 확인됐다”든지,
“‘돈도 없었다’고 했지만, 신용카드 소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든지 해야 더 옳았다.



사실은 이 모든 것도 다 필요 없는 일이다.
피랍자들의 귀국 편에는 많은 국내 언론의 기자들이 동승했고, 촬영기자들은 국정원장 뿐만 아니라 베일 속에 가려두어야 할 국정원 직원의 모습까지 다 담아와서 국민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많은 현장기자들은 아무 말이 없고 특파원이 추리해서 기사를 쓴다는 게 선뜻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동행기자들이 알 수 없는 일이거나 모두 침묵하면, 국내의 기자들이 피랍자들을 취재하여 기사를 쓰면 되는 일이다.
당사자들이 자신들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분분한데도 해명해주겠다는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냥 두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굳이 외국에 체재중인 특파원의 추리력을 동원해서 소문을 부정해 줄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싶고 왜 그렇게 하는지를 모르겠다.

설령 해당기사가 주장하고 싶었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 하더라도 그 기사는 너무나 과잉한 친절에 과도한 추리였다.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언론이 아무래도 무슨 마법에 걸린 모양이다.


오늘 피랍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서>를 쓰고 갔다는 사실을 밝혔고 유서는 고 배형규 목사의 유품에 들어 있었던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그들의 거짓말은 하 많이 보고, 듣다보니 새로울 것은 없다 하겠으나,
그토록 많은 거짓말에 장단 맞추듯 놀아난 우리 언론은 유서를 쓰고 갔다는 피랍자들의 ‘시의적절한’ 고백을 전하면서도,
여전히 “왜 거짓말을 했습니까?”라고 묻지 않고, 알려하지도 않고 있다.


이제는 우리 언론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선비로살자.
Posted by 피얼스
,
현대차 노사 임단협이 타결됐다는 소식이다.
현대차 사태를 보면 제네럴모터스(GMC)가 떠오른다.
내가 어렸을 때 제무시(GMC)는 힘센 것의 대명사였다.
제무시는 튼튼하고 고장없고 힘세고 험한 길도 거침없었다.
제네럴모터스는 미국의 장관이 GM을 위하는 것은 미국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기업의 규모도 다른 기업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컸다.

그런 회사가 불과 십몇년만에 부실기업으로 추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원인은 방만한 경영과 강성노조 연구개발부족등이 있는 데
현대차의 현재상황은 GM의 전철을 밟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자동차시장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만큼 시장도 넓다.
제조되는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클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자칫잘못하면 낙오하여 헤어나지 못하고
잘 해나가면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비하여 현대자동차의 위상은
전성기의 GM이 미국에서 차지하던 위상과 비교가 안될 만큼크다.
당시 미국인구가 2억이 훨씬 넘었는 데 GM의 생산량은 800만대 정도였다.
우리인구는 5천만이 안되는 데 현대차는 300만대가 넘는다.

현재 현대차의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상장기업중 9위와 10위를 다투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절반도 안된다.
조선업은 선박의 수명이 20-30년으로 길고 선진국에서는 사양산업화되어 군함이나 유람선같은 특수선박이외에는 조선산업이 줄어들었다.
그에 비해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으로 주요선진국외에는 생산국이 드물다.
그만큼 발전지속성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매출액과 자산, 발전지속성등이 월등이 많은 현대차가 현대중공업보다 시가총액이 훨씬 적은 것은 현대차가 GM짝 날까봐 불안해서 주식을 안사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원들은 우리사주로서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회사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파업을 해서 회사가치를 떨어뜨리면 자신들도 손해인데 이것을 모르는 것 같다.
파업을 해서 상여금 몇백만원 더받는 것이 중요한지 자신이 가진 주식 몇천만원짜리가 몇백만원밖에 안하는 게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정년연장을 요구하지만 지금 젊은 노동자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회사가 살아남아 구조조정 당하지 않고 무사히 정년퇴직하여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
회사도 무작정 사업을 확장만 할게 아니라 연구개발하고 내실을 다져서 어떤위기가 닥쳐도 견딜수 있는 힘을 비축해야 한다.

자동차산업은 절대로 사양산업이 아니다.
자동차를 한번 구입한 사람은 다음에 차를 구입할 때도 먼저 타던회사의 자동차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객을 계속관리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미국의 GM처럼 현대차도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이 될 수 있다.
현대차와 삼성전자는 비슷한 규모인데 시장의 평가는 5분의 1도 안된다.
노사가 모두 정신차리고 반성해야 한다.

<구름한점>

Posted by 피얼스
,
차 세계 대전이 종전으로 치닫자, 히틀러를 포함한 많은 장교들이 전쟁의 책임을 지고 자살을 택하였지만, 일반 장교나 병사들은 광기에서 깨어나 항복을 하거나 일상으로 돌아왔고 반성했다. 승전국들이 나찌에 협력한 매국노들을 찾아내어 정죄하는 일에 독일은 적극 협력하였다. 패전을 목전에 두고, 일본군의 일반 장교와 병사들은 불구덩이로 뛰어들고 할복을 하였지만, 정작 책임져야 할 지도자들은 항복했고 비겁하게 살아남았다. 일제에 협력한 매국노들을 정죄하려는 노력에 일본인들은 전혀 협력하지 않았고, 오히려 은폐시켰다. 독일은 지도자들이 스스로 앞장서서 정죄받거나 참회했다. 반면 일본의 지도자들은 어리석은 국민들의 뒤에 숨어 목숨을 연명하고 비굴한 명예를 이어 나갔다. 지금 아프간 인질 사태를 앞에 두고 우리나라 개신교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어느 나라를 닮았는가? 물어 볼 것도 없이 바로 비굴했던 일본의 지도자들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지금 많은 국민들과 누리꾼들이 쏟아내는 비판과 성토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질 당사자들을 향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기독교 자체를 공격하거나 기독교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일부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과 누리꾼들은 기독교 신앙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평화와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어찌 그리 자기 잇속만을 챙기고 독선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80%의 비개신교도와 양심을 갖춘 10%의 개신교도들의 오랜 의문과 울분과 반성이 이번 사태에 집약되어 표출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종교 지도자들의 꼭둑각시가 되어 눈과 귀를 막아버린 일부 개신교도들은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억지 주장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 어리석은 신도들의 강변과 궤변의 뒤에 숨어 여론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서 그 어떤 현실적인 노력도 하지 않고 숨기에만 급급하던 자들이, 이제 사태가 해결되자 엄청난 고통 속에 기도하고 도움을 준 것처럼 생색을 내고 있다.

종교 또는 신앙이 추구하는 것은 '절대 진리'이다. 종교가 없는 이들의 거부감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신앙일 수 있는 있고, 신이 신일 수 있는 이유는 '절대 진리'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기본적으로 '신과 섭리의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 배타성과 독단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리의 절대성'이 종교적인 독단과 아집과 편견으로 변형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종교 집단이 비판받고 쇠락하고 있는 이유 역시 이러한 종교적 독단과 아집과 편견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적인 '절대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경전'이 세세한 부분까지 일러준다면 좋겠지만, 모든 종교 경전은 전달자인 인간의 한계와 모순을 그대로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합의되지 못한 '절대 진리'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달리지게 되고, 신앙에 대해 목회자가 개입할 여지가 많아지며, 또 그래서 논쟁과 분쟁이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목회자와 개신교도들은 도대체가 관용이나 타협이라는 것을 모른다. 오로지 불신지옥 예수천국만을 외치면 사람들이 그 절대 명제 앞에 두려워 하고 무릎 꿇게 될 것이라는 안드로메다식 아집에 빠져있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다. 내가 단기 선교(봉사)의 무용론을 지적하자, 상당수 개신교 신자들이 단기 선교를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많은 신앙적 체험을 한다고 반박하였다. 봉사를 자기 자신의 체험을 위해서 하는가?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가?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종교 집단의 부패와 세속화와 권력화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많은 기여자가 바로 어리석은 일반 신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있다. 나와 알고 지내는 많은 친구들이 나를 교회로 이끌려고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교회는 이익집단화 되었고, 교단의 부패와 부정과 속세화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종교를 밥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종교지도자가 대부분인 현 상황에서는 교회를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가 똑같다. '그건 인간의 잘못이지, 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목사님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을 보면 교회를 다닐 수가 없다.' 어느 견해가 옳은 것인가? 나는 개신교 목회자를 맹종하는 신도들의 이러한 성향이 바로 종교 집단의 타락과 부패를 방조내지 종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착한 남자가 폭력 조직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폭력을 싫어하고 남의 돈을 갈취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여기어 그러한 조직의 행동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외면하였다. 그렇다면 그 남자에게는 죄가 없는 것인가? 아니다 그 남자도 범죄자이다. 왜냐하면 범죄 집단에 가입하였고, 가입함으로써 그 집단의 세를 불려주었기 때문이다. 또 물질적 정신적으로 그 범죄 집단에 자기도 모르게 기여를 하였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일반 신도들이 종교 집단 내에서 종교가 아니라 신앙에만 천착하는 성향은 결과적으로 종교의 부패와 타락과 독선을 종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들의 헌금과 기여와 봉사가 종교 집단 내의 암세포를 증식시키는 자양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 개신교도들의 무관심한(?) 맹종과 침묵이 종교인들의 악행과 오만과 타락의 가장 큰 배경이 되고 있음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모 방송국 토론 프로에서 한 패널이 현재 대한민국이 해외 봉사(선교) 2위의 대국이 된 것은 젊은이들의 실업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촌철살인의 의견을 내놓았다. 뭐 낀 넘이 성낸다고 교회측 패널은 그 말에 뒤가 쑤셨는지, 말도 안 된다는 반박에만 여념이 없었다. 지금 많은 개신교 선교론자들이 개신교 지도자들의 기업 논리에 의거 해외 선교를 장려하고 있는데도, 어리석은 신도들만 사명감과 봉사라는 단어에 속아 놀아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봉사가 곧 선교이지, 선교가 곧 봉사는 아니다. '믿어라'가 아니라 '사랑합니다, 아파합니다, 그래서 돕겠습니다'를 먼저 말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려면 건전한 소비자들이 단합하여 거품이 빠질 때까지 구매를 미루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이러한 심적인 단결이 현재 부동산 거품을 실제로 붕괴시키고 있다. 마찬가지이다. 종교의 거품과 부패가 없어지려면 종교를 통해 이득을 구하고 권력을 구하는 자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종교 집단에 현혹되거나 참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논리는 대한민국 교회의 논리일 뿐이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종교적 책임이 대한민국의 개신교 신도들에게 더 무겁게 요구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나를 포함한 많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종교 집단의 부패상을 자각하였고, 그래서 부패한 종교 집단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기여를 중지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 집단 내에서 신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해외 선교 확대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지만) 덧붙여, 이러한 종교적 현상이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도를 더해 가는 개신교도에 대한 사회적 증오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2차 대전 당시 나찌의 유대인에 대한 증오 확대와 차별과 학살은 연합군에 속해 있던 여타 유럽 국가들로부터도 심적인 동조를 얻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이 유대인들의 옷에 육각성을 박음질 할 때도 여타 유럽 국가들은 바라보고만 있었다. 유럽인들의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증오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독일과 다른 나라들이 적이 된 것은 유대인 때문이 아니라 독일의 유럽 지배 야욕 때문이었을 뿐이다. 왜 유럽인들은 유대인을 증오하였는가? 유대인들은 유럽 각국에 얹혀 살면서도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고수하였다. 자신들이 속한 터전과 동화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였다.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였으면서도,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핍박받고 차별받는다는 피해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럽 사회의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인 기여와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였다. 다른 민족에 대한 배려와 크리스트교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유럽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의 뿌리가 유대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유대인을 종교적 장자(長子)로 선택하였다는 구약의 정언명제로 인해 기독교 사회 유럽은 유대인을 미워하면서도 쫓아내거나 죽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2천 년 동안의 이러한 잠재적인 증오에 대해 나찌는 그저 불을 붙였을 뿐이었다. 물론 유럽인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과 미움이 전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유럽인들이 유대인들을 환대하고 포용하였다면 유대인들의 사회적 참여도 높았을 것이다. ( 건전하고 양심적인 개신교인도 꽤 있습니다. 비개신교인님들도 신앙과 신성 자체를 몰아붙이는 것은 자제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야 개신교인들도 더 열린 마음으로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개신교도들이 사회적인 책임과 일반적인 사회 규범에 민감하였다면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고 무관심해지지 않았을 일이다. 국민들은 개신교도 역시 같은 국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저 참아주고 모른 척 해 주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지난 일이고 이제 고름은 터져버렸다. 그러니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는 그 누구도 공개석상에서 유대인을 비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여전히 홀로코스트만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팔레스타인 말살에 대해서는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대한민국 개신교도들은 여전히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절대성만을 말한다. 대한민국 일반 개신교도들이 이제 생각 뿐만 아니라 행동에서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많이 신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 나의 현실, 나의 신앙, 나의 행복, 나의 부유함에 대한 시선을 우리의 현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행복, 우리의 부유함으로 넓혀야 한다. 기독교가 부당하게 비난받고 공격받는다는 피해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개신교 중심의 사회가 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개신교 스스로 '나'라는 껍데기를 깨고 '너', '우리', '책임'에 대해 진지해 질 때 대한민국 사회의 개신교에 대한 증오와 반감은 사라질 수 있다. 비겁하게 신도들의 뒤에 숨어 꼭둑각시 놀음만 일삼는 개신교 지도자들은 참된 목회자가 아니다. 그들은 종교를 이용해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구차하게 연명해 나가려는 바라새인들이다. 더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점에 각성하고 참회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천국의 열쇠(The key of the kingdom)는 달콤한 허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뇌하는 양심 속에 있다.

- 탈레반과의 인질 석방 교섭 과정에서 현찰을 직접 전달했다는 여론의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실제로 돈을 건넸다고 하더라도, 정부로서는 절대로 이를 대놓고 공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 측 역시 같은 방법을 써야 합니다. 공개적인 구상권 행사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가기 전에, 구상에 대한 보상의 형태가 아니라 참회의 형태로 정부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거나 세금(목회자 납세 포함)의 형식으로 국가와 국민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합니다. -

 <누구세호>
Posted by 피얼스
,
외국인 100만시대 열렸다고

오늘 kbs에서 진중권씨 나와서 토론을 하더군요,

거기에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아 사람들까지 나와서

한국인들 문제있다고 집단으로 성토하던데 난 우리가 왜 그들에게

욕을 먹어야 되는건지 저로써는 정말 이해 하기 힘든 부분 이었습니다,

우리가 차별이 심하다고 그러면서 성토를 하더군요,

인종차별, 그리고 가난한 나라와 부자인 나라간의 차별이 심하다고,

솔직히 이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나라나 공통적인 현상 아닙니까,

우리처럼 짧은 시간에 기하 급수적으로 외국인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들에대한 시각을 좋게만 봐줄수 없는것도 당연한 현상이고요,

또한 미국같은 나라도 인종차별이 심하고 또 인종별로 계급이 나눠졌다고 할 정도로

인종에 대한 선입견과 부국과 가난한 나라의 시선역시 다른것도 사실아닌가요,

같은 아시아인 이라고해도 일본과 중국인을 두고 미국에서도 시선이 다릅니다,

그런데 왜 우리만 이상한 사람인양 그러는지 정말 이해 할수가 없습니다,

정말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불체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서 예산까지 집행하며

또한 불체자들의 시위까지 묵인해 주고 있는것인지 저로써는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저번에 수원역에 갈 일이 있어서 수원역 에스칼레이터에 오르고 있는데

불체자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영주권 달라고 시위를 하더군요,

도대체 세상 어느나라가 대낮에 불법체류자들이 모여서 시위를 한다고 합니까,

그리고 파키스탄의 불법체류자는 한국인 여성과 위장결혼하고 그녀에게

폭행까지 가하면서 그녀가 이혼을 요구하니까,,,,,영주권 나오면

그때 이혼해 준다며 이혼을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는군요,

그래서 그녀가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니까,,,,,시민단체 왈

외국인의 인권도 존중해줘야 하는만큼 당신의 요구에 응할수는 없다고 했다는군요,

정말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불법 체류자가 위장결혼을 목적으로 결혼하고 한국인 부인을 폭행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의집 불구경하듯 하며 되려 불체자를 감싸주는 이상한 법규,

또한 안산이나 시흥에서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아 사람들과 관련된

성범죄 괴담이 넘쳐나서 밤에는 밤길 다니는것 조차 두려워서 벌벌 떤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외국인 성범죄와 관련해서 검색해보면 죄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아 같은 사람들의 성범죄 목록이 넘쳐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언론 누구하나 이런 보도는 일체 하지 않습니다,

그져 불쌍하다, 고생한다, 이런뉴의 외국인 감싸기식 보도행태

정말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문제가 있는거 아닙니까,

정부나, 언론은, 시민단체나, 기독교단체들을 의식해서 외국인 범죄관련

기사들을 자제하고 또 불법 체류자들에게 인권 보호한답시고 예산까지 집행하는데

정말 이건 아니지 싶습니다,

최소한 공정한 보도는 해줘야 되는게 언론의 의무아닐까요,

그래야 외국인들에 대한 다양한 뉴스를 접하므로써 그들에대한

나름의 인식을 갖는 계기도 될텐도 말이죠,

감싸주기식 보도에만 집착하다가 정말 큰일 터지면 외국인들 전부 범죄자로

몰리는 그런 큰 홍역을 격게 될겁니다,

제발 언론은 공정해 지시고, 정부는 산업연수생 제도 고칠점은 다시금 고치세요,

그리고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들도 나름의 단체를 세워서

정부나 언론이 방치하고있는 외국인 범죄들을 알리고 그들의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깨닫게 해줄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오늘 토론하는 양반들 이야기 들어보니까,,,,,앞으로 외국인 200만 300만

1000만 어쩌고 저쩌고 그러는데 정말 이나라 멀지않아서 외국인들 천지로

변하고 무법천지가 될까 두렵습니다,

부디 어수선한 글이지만 읽어주시고 우리국민들 우리 네티즌들

외국인이 늘어나는 현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보시고 판단하셔서

우리 후손과 우리의 앞날을 어떻게 대비해야 될지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C7%D1%B1%B9+%B1%B9%C0%FB+%C3%EB%B5%E6%C7%CF%B8%E9+%C0%CC%C8%A5%C7%D8%C1%D9%B0%D4&sm=tab_hty

제목,,,,,,한국 국적 취득하면 이혼해줄게, 시민단체들의 엽기행각,
Posted by 피얼스
,
아프간에서 인질로 잡혀있던 피랍자들이 모두 석방된다는 보도가 있다.
정부가 공식확인한 사실이니 피랍자들이 조만간 귀국하게 될 것으로 본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결과가 좋으면 과정을 용인하는 경향이 있고,
또 실제로는 결과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낫기만 하여도 좋게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번 피랍사건은 발생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아무리 잘 해결되었다 하여도 결과는 나쁜 일이었다.
더 나쁘게 되는 것 보다 나았다고 해서 나빴던 원인과 과정을 덮고 넘어갈 수는 없고,
책임 있는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사지에서 생환했다는 이유로 무작정 동정하고 영웅시하는 후진 국민 같은 태도를 취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쯤에서 짚을 것은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1.거짓말과 참말을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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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냐 봉사냐 하는 문제에서부터 석방 양보설에 이르기 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듯했던 관련자들의 언행에 대한 사실관계를 밝히고,
언론도 국민들에게 그토록 혼란스럽게 알리게 된 이유를 밝혀줘야 한다.
정부와 언론은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알리기 싫은 것을 알리지 않는 선을 넘어서 전국민이 피랍자 가족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사실관계를 따지지 말고 덮어놓고 믿고 동참해 주기를 원했다.

정부와 언론이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고려하여 그리했다면,
그 국익이라는 것이 개인의 사익과 무엇이 다른가?
목하 한국사회의 도처에서 학위와 학력을 위조한 사례들이 속출하는 이유 역시,
개인이 사익을 위하여 거짓된 방법으로 목적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익을 위하여 거짓된 방법으로 목적을 도모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그것도 전 국민들에게 동참을 요구하는 따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뭘 보고 배우란 말인가?

아무리 궁해도 거짓말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는 인질들의 석방협상을 위해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인질들이 풀려나기로 되었다니 더 이상 덮지 말고 거짓말과 참말을 가려내어 국민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피랍과 석방과정을 진실되게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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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랍자들이 아프간으로 간 이유에 대해 가족들과 관련 단체는 애초부터 선교가 아닌 순순한 목적의 봉사활동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정부와 언론도 국민 모두가 이렇게 믿어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순순한 목적의 봉사활동’이라는 주장을 ‘서천소가 웃다 자빠질’ 소리이자 ‘뻔뻔한 거짓말’ 쯤으로 생각하고 마는 국민들도 적지 않았다.
정부와 언론이 국제사회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었고 커다란 손실이었다.

피랍자들이 아프간으로 들어간 목적이 순수한 봉사활동 때문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샜고 샜었다.
당장 텔레반 측과의 합의문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거기에 왜 파키스탄 까지를 포함하여 한국 기독교의 ‘선교활동 중지’가 들어가는가?
정부는 피랍자들이 선교활동을 하지 않고 순수한 봉사활동만 했다는데 왜 국민들의 종교활동을 제한하는 사항에 합의했다는 말인가?

정부는 피랍자들이 귀국하는 즉시 그들이 왜 아프간으로 갔으며 그 곳에서 무슨 일을 했고 어떻게 하다 잡혀갔는 지에서부터 석방될 때까지의 전 과정에 대해 심문하여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피랍자들의 생환을 위해 직접적으로 지출된 비용과 국가 사무 처리 비용을 포함한 유,무형의 모든 국가적 손실에 대해서도 산출하여 공개해야한다.


3.책임소재를 가리고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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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 만큼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국민자존심을 상처 낸 일도 흔치 않았다.
책임소재를 철저히 가려내고 책임이 있는 곳에 엄중한 책임을 추궁해야한다.
국력을 낭비케 하고 국민을 부끄럽게 한 당사자들과 관련자들을 찾아내어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앞으로도 이런 어이없는 대형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우야무야 넘어 가서는 안 된다.

이번 일의 원인에서 책임 소재를 밝히고, 재발방지를 위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언론도 이 번 일로 인하여 많은 국민들로부터 공정성과 공신력을 의심받는 손실을 입었겠으나 편파보도의 정도가 너무나 지나쳐 이제는 이번 일에 있어서 책임 있는 당사자의 한 지위에 있다 하겠다.

당장은 피랍자들이 귀국할 때도 정부나 언론이 그들을 또 다시 개선장군처럼 영웅시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국제사회에서 나라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전체 국민들 얼굴에 먹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국익을 손실케 한 극히 일부의 일탈한 국민들일 뿐이고,
자신들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초래된 결과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다.
스스로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하고 석고대죄 해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이 국민들 앞에 보란 듯이 가치전도현상을 드러내 보이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4.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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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피랍자 가족들의 주장을 들어 피랍자들이 순수한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피랍되었다고 했다.
울며 겨자 먹는 격이었다 하겠지만,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피랍자의 무절제한 행동을 탓하고 가족들의 주장을 ‘뻔뻔한 거짓말’ 쯤으로 치부하고 나선 네티즌들에게 그러지 말 것을 ‘당부’까지 하였다.
그랬던 정부가 아프간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지역에서 까지 한국 기독교의 ‘선교활동 중지’를 수용했다.
피랍자들이 선교활동을 목적으로 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듯이 텔레반이나 정부나 모두가 알 수 있는 것이었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본다.

그런데 정부가 저런 합의를 했을 때는 관련 종교계가 정부의 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제 멋대로 나댈 때도 감당할 대책이 있다는 말인가?
또 몰래 나가서 나라를 뒤흔들어 놓는 일을 터뜨리면 어떻게 하겠는가?
상식적이고 점잖은 말로 설명하고 설득해서 통할 사람들이면 이런 일이 왜 생기겠는가?
국민들도 피곤하고 짜증나기가 여간 아니다.
협조를 구한다느니, 설득을 한다느니 하지 말고 법제화 해주기 바란다.
위반시 처벌조항을 포함하는 ‘파키스탄, 아프간 지역에 대한 기독교 선교활동 금지법’이라도 제정해 놓고 난 다음에, 법대로 해 주면 좋겠다.

국내에서도 종교시설물에 대한 규정을 자세하게 제정하여 종교 상징물 설치에 대한 규제는 물론 무질서한 포교행위를 제한하는 입법추진이 필요하다.
종교를 원치 않는 국민들에게는 ‘선교행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줘야 하지 않겠는가?
과도한 선교행위를 적절하게 제한하는 목적의 법제정이 필요하다.
광신교도들의 양산을 막고 가정과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종교계의 회계를 검증하고 선교행위를 제한 할 수 있는 법이 있어야 한다.
이 번 일을 그러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선비로살자>

Posted by 피얼스
,
퇴근하자마자 저녁을 먹는데 왜속보??
역시나..피랍자 소식이더군요.
무사히 석방된다니 천만다행이라구 생각되는것도 잠시..아주 잠시..쉬뺄!!!

난 그들이 올림픽 금메달이나 딴줄 알았다.
아나운서 왈 "그들의 면면을 보겠습니다."
그뒤 장면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나 나올 화면구성과 멘트..
그들이 영웅인가? 아님 국가에 이익을 도모할려 하다 피랍되었나?

그들은 단지 그들의 개인적인 영리행위를 하다가 피랍된것이다.
국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웅이 아니란말이다.
쉬뺄넘들의 방송국 새뤼들아~~~~~~~~~~~~!!!

그들은 이력서 한줄채울려고 간것뿐이다.

글구 왜 어떤 대가로 그들이 풀려났는지 왜 말을 안하는가?
그냥 말빨로 해서 협상했단말인가?
탈레반 그들이 괴독처럼 뇌가 없지 않은 이상 그냥 풀어줄리는 만무하다.
두당 얼마짜린지 밝혀라!!!!

쉬뺄 정말 열받넹..

그들은 영웅이 아니고 범죄자다!!!!

PS- 밑에 댓글중에 냄비 어쩌구 하는양반들있든디...
냄비는 금방 식지만 금방 끊는다는거 모르시나...
미친 괴독들처럼 먹사들이 먼짓(성폭행, 성희롱, 횡령, 목사직 세습...)을
해도 끊을 생각도 하지 않는 괴독들 보다 금방 식지만 금방 끊는 냄비가
낮다. 쉬뺄넘의 괴독들아~~~~~~~~~!!
참고로 이번건은 절대 금방 식지않을것이다.
왠줄아냐? 그들이 돌아와서 그냥 가만히 있겠냐?
간증회 부흥회 돌아다니면서 지랄발광을 할건데...
아마 책두 낼수도 있지..그럼 또 다시 불을 지피겠지..ㅋㅋㅋ
사회악인 "괴독박멸" 그날까지.....

<세상보기>

Posted by 피얼스
,
솔직히 어제 KBS심야토론을 보면서 그것이 토론인지 토의인지 분간이 안갈정도다..

특히 진모교수라는 양반은 웃으면서 한국의 단일민족주의문화가 짐승같은 짓이라고, 한국의 문화를 짐승과같다고 마치 고결한 지식을 얘기하는 양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를뿐이다.

토론이라면 우리 단일민족주의에 대해 명백히 찬성하는 사람도 나와야하는데 거기나온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다 단일민족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만이 나왔고 찬성하는 사람은 한명도 안나왔으며

외국인근로자대표로 나온 시민논객과 파키스탄 출신 패널들 인권위원회 사람, 시카고 대학교에서 인권대표를 했던 사람, 자칭 좌파라고 떠드는 진모교수, 인권 보호단체 대표등

전부다 반대론자뿐이다.

이것은 토론이아니고 토의일뿐이다. 또한 불법체류자까지도 인권을 보호해야한다고 얘기하는 그들의 위험한 발언과

단일민족주의 역사 자체를 부인하고 우리는 각나라에서 짬뽕된 민족이라고 무식한 발언을 하는 그들의 얘기에서 얼마나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도 모르면서 무조건 다민족 다문화화해야한다고 얘기하는 그들의 얘기속에서

자신의 편견만을 난 봤을뿐이다.

또한 외국인 출신 패널과 노동자가 자기들때문에 한국경제가 이만큼 성장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말속에서 헛웃음만 나올뿐이다.

파키스탄은 그들의 말처럼 인종차별은 없을지언정, 남녀의 심각한 차별과 종교적 차별,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심각한 인권유린등 엄청난 잘못을 저질르고 있고

타종교인이 거기서 타종교를 얘기하는순간 그들이 그렇게 차별이 없다고 떠드는 코란에 의해 사형을 당해야한다.

그럼 이것은 차별이 아니고 고결한 종교의식이란말인가?

물론 한국사회에 뿌리깊이 있는 장애인, 돈없는 자, 그리고 가난한자와 외국인에 대한 차별문화는 정말 없어져야한다.

이것은 뿌리깉은 성리학의 유교문화라고 난 얘기하고 싶다.

하지만이것이 곧 우리의 단일민족문화와 연관시키고 그것을 없애서 우리의 주체성을 무장해제시키고 세계시민화해야하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자신의 언어 자신의 문화 자신의 민족성이 없는 나라는 역사에서 보듯이 도태되고 흡수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진모교수라는 양반은 자기의 조상은 중국사람이라면서 단일민족문화가 마치 짐승같은 하위문화라고 비웃으면서 얘기하는 그 얼굴에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를뿐이다.

그들이 얘기하는 역사관은 중국이 얘기하는 바로 중화중심적 역사관이며 친일적 역사관인데도 그것을 아무렇게나 얘기하는 그들에게 욕지기를 안할수가 없다.

우리의 문화를 과연아는가? 우리의 역사를 과연아는가?..

단일민족문화는 우리가 굳건히 지켜야할 우리의 주체성이다...

추신 : 마치 우리의 단일민족문화가 과거 독일의 히틀러의 국가주의와 같다고 얘기하는 진모교수의 무식한 발언을 들으면서 그렇다면 그 얘기를 들은 우리와 똑같은 단일민족주의 문화를 같고 있는 이스라엘은 모라고 할지 궁금할 뿐이다..


<Soulmusician>
Posted by 피얼스
,
다음은 sbs 8뉴스 중 일부 입니다

<앵커>
미국의 비인증 대학 이른바 '학위공장'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국내 대학에 취업한 스무명에 대해서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김수형 기자입니다.

<기자>
검찰이 1차 수사 선상에 올린 인물은 20여 명입니다.
학술진흥재단에서 넘겨받은 비인증 미국대학 박사 276명 가운데, 신학 박사 등을 제외한 백여 명을 추려낸 다음, 사학연금공단 명부 등을 통해 현재 대학교에 취업한 것으로 확인된 20여 명을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겁니다.
이들이 취업한 대학은 주로 서울의 전문대학과 지방의 사립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사 대상 대부분은 교수이며, 일부는 사무직 직원으로 파악됐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이들의 사법처리 여부는 엉터리 박사 학위가 교수가 되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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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중 대학 출신 박사 276명 중에서 신학박사 등을 재외한
100여명을 추려내서 수사한다면, 산술적으로 100여명으로 추산되는
신학박사는 왜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가?

대학교에서 취업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수사하면서
왜 교회에 취업해서 학력으로 뻥치는
Dog Poison은 수사 안하는가?

엉터리 박사가 교수가 되는데 영향을 미쳐는지 조사하면서
왜 가짜 신학박사들이 목회활동하는 것은 조사 안하는가?

서울대 다녔다고 구라친 주지가 고백한 뉴스는 봤어도
저 가짜 신학박사 100여 명 중
누구도 고백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없는 것이
바로 한국 Dog Poison의 현실이다.

참회하라 이 가짜들아!

그리고 한때 정권이 시녀소리를 들었던 검찰이
이제는 Dog Poison의 시녀가 되려는가?

Dog Poison의 탈을 쓰고 있으면,
가짜도 걱정없이 사는 나라.
아 대한민국이여.

가짜 외국박사가 학교에서 애덜 가르치는 것을 수사하는 검찰이
가짜 신학 박사가 어리숙한 신도들을 학벌로 꾀는 건
아예 손도 데지 않는다.

종교가 아편이란 말이 허황된 말이 아닌 것 같다.

<Misty>
Posted by 피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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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헐리우드에 여행을 다녀 왔는데요...
길거리에 디워 포스터가 있더라구요~~
중심가가 아닌 좀 외곽에 있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해지더라는..
심형래 감독님 성공하셔서
나중에는 헐리웃 보도블럭에 이름이 새겨지시길^^


<이동현>
Posted by 피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