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기사는 왜 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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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사건에서 보여준 우리 언론의 후진성은 피랍자들이 석방된 후에도 여전하다.
언론의 데스크가 기사로 채택하는 기준도 이해되지 않고 기사로써의 요건조차 불명한 추리가 사실관계를 가리는 기사로 실리는 일도 다반사다.


피랍사건 초기에 인터넷에는 소위 ‘두타스님의 굴욕’이라는 사진이 유포된 적이 있었다.
이 사진은 십자가를 들고 있는 한 기독교인이 부산에서 ‘민들레밥집’이란 간판으로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에게 식사를 봉양하는 두타스님이 지하상가에서 시주를 받고 있는 데 와서 스님의 맨머리를 만지고 흔들며 ‘회개하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찍은 것이었다.
( http://tinyurl.com/2gy4bc )


이 사진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자, 국내의 한 언론은 그 사진을 캡쳐하여 ‘기사화’ 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진은 “탈레반에 이메일… 일부 네티즌,몰상식 행동 물의”라는 제하의 기사에 포함 되었다.
해당 기사의 내용은 <“실제 사진인지 조작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인터넷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이 사진은 피랍자들을 비판하는 일부 여론과 맞물리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로 급속 확산,기독교 전체에 대한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였다.

‘실제 사진’이라면 ‘광신도의 만행’을 규탄해야 응당하고,
‘조작된 사진’이라면 ‘네티즌의 철없는 행동’을 개탄해야 마땅한 사진이었는데,
기자는 왜 그 사진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았을까?

사진의 진위는 두타스님께 연락을 해보면 간단하게 확인 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 사진인지 조작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이라는 면죄부와 함께, 그 사진은 “탈레반에 이메일… 일부 네티즌,몰상식 행동 물의”라는 제하의 기사 속에 들어갔다.
네이버는 그 사진의 기사에 기독교를 비난하는 댓글이 봇물을 이루자 댓글을 폐쇄해 버렸다.

사진을 처음 올렸던 네티즌이 소신을 굽히지 않자 용기를 얻은 다른 네티즌들이 피고발의 위험을 무릅쓴 채 계속하여 그 사진을 이곳, 저곳으로 퍼다 날랐고, 언론의 해당 기사가 악의에 찬 것이라며 맹렬히 성토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그 기사를 썼던 기자는 ‘두타스님의 굴욕’ 사진을 사실로 확인했다며,
<'굴욕' 두타스님 "전생의 잘못인 듯…오히려 제가 죄송">이라는 제하에 두타스님과의 인터뷰 기사를 올렸다.
그 기자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사실관계 확인을 왜 처음부터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9월 3일, 국내 각 언론사와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는 연합뉴스는 열독율이 높았던 두 개의 기사를 제공했다.
뉴욕 특파원이 송고한 “아프간 피랍자 귀국후 안도-분노 동시 직면 <NYT>”라는 기사와,
두바이 특파원이 송고한 “<고침> 국제(피랍자 두바이면세점 명품쇼핑…)”이라는 기사였다.

둘 다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한 것이었지만, 해외 특파원이 보내온 기사였다.

그중 “아프간 피랍자 귀국후 안도-분노 동시 직면 <NYT>”라는 기사는 이번 피랍사건에 대해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판적인 여론을 소개하는 내용이었지만,
우리언론은 안방의 여론을 직접 취재하여 기사를 쓰지 않고 외신의 보도를 인용, 편집하여 보도 하였다.
이는 언론이 통제받던 군사독재시절에 소심한 기자들이 우회적으로 국내여론을 전하기 위해 애용하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그런 시대 상황이 아니고, 또 국내 언론은 이미 자체적으로 취재하여 많이 보도했기 때문에 외신의 반응도 소개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국내 언론은 비판여론을 제대로 취재하여 보도하지 않으면서 외신을 인용 보도했다.



또 다른 하나, “<고침> 국제(피랍자 두바이면세점 명품쇼핑…)”이라는 보도는 기사의 요건이 뭔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기사였다.

기사의 요지는 일부 네티즌이 주장하는 피랍자들의 `명품 쇼핑설'의 근거를 대체로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모두가 근거가 없으니 피랍자들이 두바이에서 쇼핑을 했다는 소문은 사실무근의 헛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의 내용이나 결론을 도출해내는 방식이 당최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이런 기사라면 국내 본사의 기자가 피랍자들에게 물어 보고, 취재해서 쓰면 되지 두바이 특파원의 추리력이 왜 필요했는지를 모르겠다.
두바이에서 쇼핑을 한 적이 있는지, 없다고 한다면 그 면세점 쇼핑백과 신발상표가 있는 쇼핑백을 들고 온 경위는 어떻게 된 것인 지를 물어보고 당사자들의 답변을 들은 다음, 그 경위에 포함되는 관계자들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기사를 쓰면 되지 않겠는가.
피랍 당사자들에게 불리한 소문임에도 불구하고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면, 취재에 응하지 않더라는 사실을 알리고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것만 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사는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내용 보다는 기자의 영특한 추리력이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선글라스는 일부 네티즌의 주장처럼 두바이에서 산 물건이 아니다.”>고 단정하는 근거로,
<“여성 인질의 명품 선글라스는 지난달 31일 석방 뒤 카불의 호텔에서 찍힌 피랍자의 사진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고 했다.
결국 네티즌이나 기자나 똑 같이 사진을 보고 추리를 하는데, 기자의 추리가 네티즌보다 더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것이니 “아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비닐봉투 안에 대사관이 지급했던 노란 아랍식 무늬 쇼핑백이 희미하게 비치는 데 이것으로 미뤄 이 남성인질이 신발을 산 게 아니라 쇼핑백의 줄이 끊어지자 임시로 누군가가 구해 준 이 봉투에 쇼핑백을 통째로 담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쓴 이 기사구절은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대목이라 하겠고, 설령 사실이 아니라 해도 그 놀라운 문학적 자질을 인정해 줘야 할 듯하다.
사실이라면 희미한 사진 한 장으로 “남성인질이 신발을 사지 않았고”, “쇼핑백의 줄이 끊어지고”, “누군가 임시로 봉투를 구해주고”, “그 봉투에 줄이 끊어진 쇼핑백을 통째로 담고”하는 그 모두를 완벽하게 추리한 놀라운 능력을 어느 누가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들을 한국행 비행편 탑승구까지 인도했다는 정부 관계자는 "1일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탑승시간에 빠듯하게 공항에 갔다"며 "여유롭게 공항 내 면세점에서 쇼핑을 할 시간은 물론 돈도 없었다"고 말했다”>는 것도 사실관계를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적어도 ‘시간’과 ‘돈’이 없어 쇼핑은 할 수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졌다면,
기자가 확인해 보니, “피랍자들은 두바이 공항의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와 5분만에 바로 탑승을 완료한 것으로 확인되어 면세점에서 쇼핑을 했다는 소문은 설득력이 없다“든지,
“정부관계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확인 해보니 실제 탑승시간 까지는 30분의 여유가 있었다”든지 해야 좋았고,
‘돈도 없었다’는 말로 쇼핑을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을 할 참이었으면,
‘돈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들은 신용카드마저 억류중 모두 빼앗겼던 것으로 확인됐다”든지,
“‘돈도 없었다’고 했지만, 신용카드 소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든지 해야 더 옳았다.



사실은 이 모든 것도 다 필요 없는 일이다.
피랍자들의 귀국 편에는 많은 국내 언론의 기자들이 동승했고, 촬영기자들은 국정원장 뿐만 아니라 베일 속에 가려두어야 할 국정원 직원의 모습까지 다 담아와서 국민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많은 현장기자들은 아무 말이 없고 특파원이 추리해서 기사를 쓴다는 게 선뜻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동행기자들이 알 수 없는 일이거나 모두 침묵하면, 국내의 기자들이 피랍자들을 취재하여 기사를 쓰면 되는 일이다.
당사자들이 자신들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분분한데도 해명해주겠다는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냥 두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굳이 외국에 체재중인 특파원의 추리력을 동원해서 소문을 부정해 줄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싶고 왜 그렇게 하는지를 모르겠다.

설령 해당기사가 주장하고 싶었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 하더라도 그 기사는 너무나 과잉한 친절에 과도한 추리였다.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언론이 아무래도 무슨 마법에 걸린 모양이다.


오늘 피랍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서>를 쓰고 갔다는 사실을 밝혔고 유서는 고 배형규 목사의 유품에 들어 있었던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그들의 거짓말은 하 많이 보고, 듣다보니 새로울 것은 없다 하겠으나,
그토록 많은 거짓말에 장단 맞추듯 놀아난 우리 언론은 유서를 쓰고 갔다는 피랍자들의 ‘시의적절한’ 고백을 전하면서도,
여전히 “왜 거짓말을 했습니까?”라고 묻지 않고, 알려하지도 않고 있다.


이제는 우리 언론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선비로살자.
Posted by 피얼스
,
어제 9시뉴스 마무리 멘트

<...지금이라도 국민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정부의 외교력을 믿고싶습니다.>



마치 지금까지는 네 가족이라는 생각에 협상이 부진했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생각해보시지요

개인도 그러한 경우가 있거니와 특히 국가간의 거래는 철저한 이해 관계에 따른 자국이익 중심입니다

전쟁중인 그들이 무엇 때문에 한국을 위하여 인질과 포로교환 이라는 선택을 할까요?
더구나 그들 싸움과 한국 샘물교회 신도간에는 단지 한국인 말고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있지가 않습니다.

한국도. 아프간도. 미국도. 불쌍한 아프간 민중을 도와달라고 샘물교회 신도들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미필적 고의로 화를 자초한것 뿐이지요.

박은조 목사가 "인류애를 바탕으로 '좋은일'하다 그랬다" 라고 했습니다만

탈레반도 아프간도 미국도 저렇게 쌈박질하는 이유가 세계 평화를위해 '좋은일'을 하기위한 신념 때문이라는 착각에서입니다.
어쩌다 세상이 너도나도 그놈의 '좋은일' 때문에 죽고 죽이는 이상한 꼬라지가 된거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토록 갈망하는 피납자 구출에 정부가 할수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혹 나라를 몽땅 들어 받치면 모를까 정부로서도 사실상 '민간요법'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겁니다.

이는 내가족 네가족..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교회측도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피납자 가족도 수단과 방법에 있어 생각하는 바가 있을테고 아무리 정부가 내 가족처럼 최선을 다한다 해도 분명 넘지못할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좀더 솔직히는 정부의 내 가족같은 노력에도 불구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경우 발생할 책임전가와 회피등 네가족 타령도 있을 가능성 때문입니다.

피납 가족은 처음 일이 발생한때도 앞 뒤없이 정부 의지부터 탓했습니다.
'안이한 대응' 운운하며 날을 세우다 네티즌의 거센 비판에야 꼬리를 내렸지요.
세상이 피납자와 그 가족. 교회 중심으로만 돌아가는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언제까지 정부와 남 탓만 할수있을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가족의 심정과 정서 그리고 정부의 외교력 만으로 해결하기엔 현지 당사국간의 사정이 너무 복잡하고 피납자와의 이해관계도 전무한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맨땅에 헤딩이란 말이지요.

차라리 지금은 봉사(?)를 무기로 내 외에 선처를 기대하기 보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것이 중요한듯 보입니다.
그러자면 우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정직해야겠지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선교가 아니라면 봉사 정신에 따른 순수함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개신교의 오만방자가 죽어야 피납자가 살아올수 있습니다.

<다다미>
Posted by 피얼스
,
사태가 우려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가히 최악의 상황이 올까 두렵다.
이 시점에서 정부의 국제 정치력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 정부는 사태 초기에 과거 김선일씨 사건을 교훈삼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철수 예정 긴급 담화를 발표하고 아프간 현지에 채널 네트워크를 확보하려 하고 또한 특사도 파견하는 등 기민하고 신속하게 대응했다. 지난 이라크 인질 사건의 학습효과에 따른 초기 이러한 부산하고 신속한 대응은 그래도 이번에는 뭔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낳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인질 한명이 무참하게 살해되고 이어서 또 한명의 인질이 살해되는 처참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아프간 사막에서 문자 그대로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 얘기인줄만 알았던 테러가 우리에게도 이렇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과연 우리 한국이, 외신들이 흔히 소개하듯 "은자의 나라, 은둔의 나라"가 맞는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이는 그만큼 한국의 또한 한국인의 활동반경이 과거와 비교해 몰라 볼게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 인질 사태도 그러한 와중에 벌어진 참사이다.


나는 이번 사태를 한국의 국제 정치력의 시험대로 본다. 당초에 인질 맞교환 얘기가 흘렀을 때 그래도 인질 8명은 풀려나올 줄 알고 있었다.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 짐작하긴 어려우나 뭔가 잘 안 돼서 결렬된 것이 분명하다. 미국 측의 차량이 뒤에 버티고 있어서 탈레반이 차를 돌려서 그냥 되돌아 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아예 처음부터 인질 교환은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말도 나온다.
우리는 아프간에 적지 않은 병력을 파견하고 있는 국가이다. 비록 비전투 부대라고는 하나 지원부대의 성격상 아프간 재건과 후방 건설의 임무에서는 그간 적지 않은 기여를 해 왔다고 본다.


아프간 정부와 미국측이 인질 맞교환 동의를 해 줘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고 본다. 지금 미국은 형식상의 규탄 성명만 내 놓을 뿐 일체 이번 사태에서 손을 떼고 있다. 미국 정부에 묻고 싶다. 그대들과 이번 사태가 정녕 아무 상관이 없는지를. 탈레반이 금전을 요구한다면 우리정부 독단으로도 어떻게 해결해볼 수도 있겠으나 지금 확실한 건 그들이 인질 맞교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정부의 재량 밖이다. 초기 협상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이러한 재량 밖의 협상 조건 때문이었다.


우리는 인질을 맞교환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저번에 이탈리아 기자도 인질 교환으로 풀려나온 사례가 있다. 왜 그러한 선례가 우리의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는가? 우리는 이라크, 아프간, 그밖에 분쟁지역에 다수 병력을 파견하는 국가이다. 우리는 국제문제에 결코 인색하거나 우리의 안위만을 챙기는 국가가 아니다. 미국의 파병 요구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다 들어 주었다. 왜 한국이 이런 대접 밖에 못 받아야 하는가?


이것은 한국 국제 정치력의 시험대이다. 진정한 우방인지, 아니면 친구를 가장한 위선자인지는 이렇게 위기 상황에서 판명되는 법이다. 개인간에도 진정한 우정은 친구가 도움을 요청할 때 드러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 정부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탈레반 세력에게 우리 국민을 해하지 말것을 경고했다. 그러나 역시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미국은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이번 사태를 '방기'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방관이자 회피이다. 선량한 우리 국민의 목숨이 그깟 테러범(거물급 교환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아프간 감옥안에 수감된 하급 테러범) 몇몇의 몸값도 안 된단 말인가?


대체 우리나라는 미국에게 '동맹국' 취급이나 받고 있기는 한 걸까? 이번 사태에 너무도 무심하고 냉정한 그들, '큰형님'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written by 이수연>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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