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기독교 근본주의 폭력성의 부활이 아닐까 심히 염려될 정도입니다.


자료:기독교 근본주의 폭력성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430250


나를 비롯 모든 인간에게는 폭력성이 존재한다. 그러한 성향들이 권력에 의해 정치와 종교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때를 항상 예의주시해야 한다. 우리나라 개신교에 잔존하는 근본주의 성향은 매우 뿌리가 깊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폭력성과 기독교의 근본적 비폭력-발취
김 준우 (감신대 초빙교수,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암살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설교자 팻 로버트슨(75), 공산품 수출을 구실로 제3 세계 농민들에게 가해지는 시장의 폭력과, 청소년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게임의 폭력은 두말할 것도 없다.

세계화 시대에 기독교 근본주의가 뒷받침하는 전쟁경제체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가장 많은 민간인들이 전쟁에서 죽어가며, 온 생태계와 지구 자체를 살해하는 체제이다. 이처럼 인간의 짐승화와 생태계의 파멸을 촉진시키는 폭력적 체제를 기독교 근본주의가 뒷받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기독교인들이 불신자들보다 더욱 폭력적인가?
로널드 사이더(Ronald J. Sider)의 신간 {왜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사는가?}(Why Are Christians Living Just Like The Rest of the World?: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2005)에서, "거듭난 신자들"(born-again Christians), 즉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의 불신자들과 똑같이 아내를 많이 구타하며, 이혼을 더욱 많이 하고, 불신자들보다 더 인종차별적이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기독교인들의 신앙 양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미국 중남부의 성경지대(Bible Belt)라는 보수적 지역은 전국 평균보다 50%나 더 높은 이혼율을 나타냈으며(Brad Wilcox 조사, 2001), 인종차별주의, 곧 흑인 이웃을 거부하는 비율이 가톨릭과 일반인들은 11%인데 비하여, 주류 개신교인들은 16%, 침례교인과 복음주의자들은 17%, 남침례교인은 20%로 나타났다(1989년, George Gallup 조사).

또한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예일대학교 임학과 교수인 스티픈 켈러트의 설문조사(1987) 결과에 따르면, 교회 예배에 자주 참석하는 기독교인일수록 동물들에 대해 정복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반면에, 비기독교인일수록 생태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거듭나고 예배에 자주 참석하는 기독교인일수록 가정폭력과 이혼, 인종차별주의,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불신자들보다 더욱 폭력적이며 반(反)생명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신학적 이유는


첫째로, 기독교의 전통적인 초자연적 유신론은 여호와의 "전능하사 하고자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극도의 임의성과 강제성을 지닌 전제군주와 같은 분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이런 여호와를 섬기는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라고 믿고, 여호와의 전능을 모방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가로막는 자들에 대한 폭력을 전능하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자행할 수 있었다. 농민전쟁에 대한 루터의 입장이 그 좋은 사례이다.

둘째로, 기독교가 성경 속에 고대 이스라엘의 부족주의와 생존 논리가 만들어낸 증오와 편견의 본문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여호와를 제국주의와 가부장주의를 뒷받침하는 폭군으로 둔갑시킨 때문이다

셋째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여호와의 계획이었다는 고백은 "폭력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왜곡된 신화,신념(월터 윙크)를 확증하였고, 이 신념은 기독교인들의 자의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었다.

넷째로, 그리스도는 어둠이 전혀 없이 빛만의 존재이며, 그런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은 구원받은 신자들 역시 전혀 어둠이 없는 존재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어둠과 죄악을 악마의 탓으로 돌리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악마를 멸절시키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강조하게 된 때문이다.


몇 해 전 연말 동남아에 닥친 쓰나미와 금년 여름 미국 남부에 닥친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수 십만 명의 희생자를 낸 자연재앙에 대해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불신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이라고 설교하였다.  지난 10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회의에서도 어느 신학대학교 총장 역시 "모든 재난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이며, 심판이고 징벌"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아침에 부모와 처자식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어 슬픔과 절망에 휩싸인 이들을 위로하기는 커녕, 그들의 희생이 "인간의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결국 "천벌에 의한 마땅한 희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재앙의 원인을 "신의 뜻"으로 깔끔하게 해명하려는 서투른 노력이기는 하지만, 그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마저 저버린 언어폭력이며, 그 유가족들에게는 자연 재앙에 버금가는 종교적 저주와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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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기름항아리와 횟불 나팔과 검


사사기 6장14-21절
-항아리와 횃불을 통해 미디안을 공격 대승

-바알의 단을 훼파하여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을 얻음(바알과 싸우는 자라는 뜻)

우상타파

-그는 70명의 아들로 슬픈 기록을 남겼다.

기드온은 공적인 사명자로서는 성공하였는데 도덕적인 사생활은 본이 되지 못했다.


본래 청와대는 봉황과 무궁화가 상징이였으나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사용해오던 문장을 버리고 새로만든게

저 문장.

 

즉 한국의 전통적인 봉황(역사적 신화적 의미의 주작 - 단군역사관련)

즉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봉황은 우상숭배입니다.


더 충격적인것은 당선인과 그를 지지하는 단체들입니다.

개신교는 사랑실천당을 만들어 총선을 겨냥해 활동을 했습니다



 
 

전광훈 “예수 안믿는놈 다 감방에 쳐넣어”

 
 

"예수님 나라 만들기 간단하다. 국회 백프로 점령하고 예수 안 믿는 놈은 감방에서 5년. 얼마나 좋아" 전광훈(사랑실천당) 목사 청교도영성훈련원에서 23일 발언.


◆ 한기총, "우리가 목숨 걸고 사랑실천당 밀겠다"


▲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차기회장 엄신형 목사


한편, 하루 전날인 22일 대표 보수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이 사실상 사랑실천당에 적극 지지를 표명했다.

한기총에서 낙선운동본부를 만들어 신앙을 지탄하고 하나님을 지탄하는 법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사람들은 어느 지역에서든지 당선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지자들, "사랑실천당이 이 나라를 복음화 시켜야 된다"


http://www.pulug.com/Issue/View_01.html?IDX=1419&L_page=1&boardtype=news&boardcode=1
 


 뉴라이트,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 - 오마이뉴스

동영상, 전광훈목사"무조건 이명박 찍어. 알았지? 알았지?" - 오마이뉴스 E

이명박이 청와대에 교회를 짓는다고? - 오마이뉴스 E

뉴라이트 인사, 한나라당 공천신청 줄이어 2008.02.10 (일) 오후 12:08 | 프리존뉴스

김진홍 이명박 위해 뉴라이트 시작 2007.12.25 (화) 오후 12:55 | 뉴데일리

뉴라이트 어떻게뽑은 이명박인데 WN1324667 2007.12.27 (목) 오전 11:28 | 뉴데일리



//요약

전광훈 “예수 안믿는놈 다 감방에 쳐넣어”
한기총, "우리가 목숨 걸고 사랑실천당 밀겠다"
지지자들, "사랑실천당이 이 나라를 복음화 시켜야 된다"
뉴라이트, 이명박  지지
뉴라이트+사랑실천당+한기총+이명박

 

 



역사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가 부활하면 십자군원장, 미국,영국,스페인,남미 어디서나 역사적으로 대학살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국내에서 종교적인 갈등과, 심각한 쟁투, 이념갈등(친일파 - 빨갱이논란)으로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이 예상되고, 종교적인 갈등이 사회적으로 심화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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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가 독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독일에서 비춰지는 기독교 - 그러니까 여기서는 개신교지요 - 는 한국에서와는 너무나도 틀린 모습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프로테스탄트의 원조는 독일입니다. 부패한 카톨릭을 비판한다는 취지에서 출현한 개신교는 그 태생적 특성상 비판정신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비판의 대상에서 개신교 자신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독일 정신계 특유의 지적 분위기가 이러한 비판의 날을 더욱 더 날카롭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의문과 성서에 대한 독일 신학계의 비판적인 연구들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급기야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들을 완전히 붕괴시키기에 충분한 학술적 결과물들을 내놓게 됩니다.

이러한 연구의 중심에 서있던 신학자이자 의사인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쳐 박사는 이 같은 붕괴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내부의 모순적 문제들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 불리는 루돌프 불트만에 의해 기독교의 탈신화화가 진행되면서 이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독일 개신교는 현재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분 중 최근 은퇴하신 고등학교 교사분이 계십니다. 얼마 전 아프간 피랍 문제로 이 분과 얘기를 했었는데, 당신의 형님 얘기를 해주시더군요. 이 분 형님은 카이저스라우터른에 위치한 교회의 목사님인데, 자신의 교회를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면 "그건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 신화적 상징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더군요. 즉 한국 교회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근본주의적 교리를 포기한지 오래라는 얘깁니다.

이 목사님이 혼자 유별난 게 아니라 사실 대부분의 독일 목사님들이 이 분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독일 신학계의 철저하고 비판적인 신학에 강하게 영향을 많은 독일 개신교 교회들과 목사님들은 교회의 존재 이유를 더 이상 신앙 그 자체에서 찾지 않고 사회적 봉사의 차원으로 이해합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독일 개신교는 60~70년대의 학생운동과 80년대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력을 갖고 있어서 한국과는 달리 분위기가 대단히 진보적입니다. 제가 보기에 전도 같은 것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독일에서 기독교는 날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믿고 싶으면 아무거나 믿으면 된다. 꼭 기독교 믿을 필요없다."라고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말씀하시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 인상 깊게 느끼는 것은, 그냥 근본주의적 교리를 펼치면 신도가 떠나지 않을텐데, 이러한 단순한 방법을 놔두고 스스로의 몰락을 자처하는 목사님들의 모습을 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에 대한 추구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해줍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래도 끝까지 근본주의적 교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이른바 '자유교회'라고 불리우는 교회를 다닙니다. 독일은 종교의 강제성은 없지만 국교가 기독교(카톨릭 포함)이고, 교회가 국가소속입니다.

따라서 자유교회라는 것은 국가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교회를 지칭함과 동시에 한국식의 근본주의 교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자유교회 대부분이 기존 교회의 합리적 종교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자유교회를 보는 사회 일반의 시각은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위험천만한 발상을 하는 이상한 종교집단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를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한 대학의 저명한 신학교수가 나와서 말하길, 기독교 근본주의는 그 교리상 민주주의, 그리고 현대 문명과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다는 말을 하더군요.

아프간 피랍 한국인들에 대한 뉴스가 이곳 독일에서도 종종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리 크게 비중을 갖고 다뤄지지는 않지만 몇 주 전 공영방송인 ZDF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평소 보다는 다소 비중 있게 다뤄진 적이 있는데, 전 이 방송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피랍과 관련된 전반적인 상황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앵커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들은 왜 그토록 위험한 아프가니스탄에 자발적으로 갔을까요? 이들은 자유교회 소속의 신도들이었습니다."

전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쓰다 보니 너무 길게 쓴 것 같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고 이것이 세계기독교 전체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노파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의 참 모습은 한국의 개신교와는 참으로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혹시 이미 다 알고 계셨던 내용이라면 송구스럽습니다.^^;;

어찌되었던 기독교는 자기희생과 사랑의 종교이니만큼 이러한 기독교의 소중한 가르침이 어떻게 전파될 수 있을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공감하시면 여러 분이 볼수 있게 추천하시는 센스~


( 자료 수집 차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다음과 글을 만났습니다. 이번 아프간 선교 피납 사건에 대해 독일에서 살고 있는 김준석이라는 재독동포가 쓴 글입니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흥미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윤옥현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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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세계 대전이 종전으로 치닫자, 히틀러를 포함한 많은 장교들이 전쟁의 책임을 지고 자살을 택하였지만, 일반 장교나 병사들은 광기에서 깨어나 항복을 하거나 일상으로 돌아왔고 반성했다. 승전국들이 나찌에 협력한 매국노들을 찾아내어 정죄하는 일에 독일은 적극 협력하였다. 패전을 목전에 두고, 일본군의 일반 장교와 병사들은 불구덩이로 뛰어들고 할복을 하였지만, 정작 책임져야 할 지도자들은 항복했고 비겁하게 살아남았다. 일제에 협력한 매국노들을 정죄하려는 노력에 일본인들은 전혀 협력하지 않았고, 오히려 은폐시켰다. 독일은 지도자들이 스스로 앞장서서 정죄받거나 참회했다. 반면 일본의 지도자들은 어리석은 국민들의 뒤에 숨어 목숨을 연명하고 비굴한 명예를 이어 나갔다. 지금 아프간 인질 사태를 앞에 두고 우리나라 개신교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어느 나라를 닮았는가? 물어 볼 것도 없이 바로 비굴했던 일본의 지도자들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지금 많은 국민들과 누리꾼들이 쏟아내는 비판과 성토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질 당사자들을 향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기독교 자체를 공격하거나 기독교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일부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과 누리꾼들은 기독교 신앙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평화와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어찌 그리 자기 잇속만을 챙기고 독선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80%의 비개신교도와 양심을 갖춘 10%의 개신교도들의 오랜 의문과 울분과 반성이 이번 사태에 집약되어 표출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종교 지도자들의 꼭둑각시가 되어 눈과 귀를 막아버린 일부 개신교도들은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억지 주장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 어리석은 신도들의 강변과 궤변의 뒤에 숨어 여론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서 그 어떤 현실적인 노력도 하지 않고 숨기에만 급급하던 자들이, 이제 사태가 해결되자 엄청난 고통 속에 기도하고 도움을 준 것처럼 생색을 내고 있다.

종교 또는 신앙이 추구하는 것은 '절대 진리'이다. 종교가 없는 이들의 거부감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신앙일 수 있는 있고, 신이 신일 수 있는 이유는 '절대 진리'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기본적으로 '신과 섭리의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 배타성과 독단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리의 절대성'이 종교적인 독단과 아집과 편견으로 변형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종교 집단이 비판받고 쇠락하고 있는 이유 역시 이러한 종교적 독단과 아집과 편견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적인 '절대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경전'이 세세한 부분까지 일러준다면 좋겠지만, 모든 종교 경전은 전달자인 인간의 한계와 모순을 그대로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합의되지 못한 '절대 진리'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달리지게 되고, 신앙에 대해 목회자가 개입할 여지가 많아지며, 또 그래서 논쟁과 분쟁이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목회자와 개신교도들은 도대체가 관용이나 타협이라는 것을 모른다. 오로지 불신지옥 예수천국만을 외치면 사람들이 그 절대 명제 앞에 두려워 하고 무릎 꿇게 될 것이라는 안드로메다식 아집에 빠져있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다. 내가 단기 선교(봉사)의 무용론을 지적하자, 상당수 개신교 신자들이 단기 선교를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많은 신앙적 체험을 한다고 반박하였다. 봉사를 자기 자신의 체험을 위해서 하는가?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가?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종교 집단의 부패와 세속화와 권력화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많은 기여자가 바로 어리석은 일반 신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있다. 나와 알고 지내는 많은 친구들이 나를 교회로 이끌려고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교회는 이익집단화 되었고, 교단의 부패와 부정과 속세화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종교를 밥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종교지도자가 대부분인 현 상황에서는 교회를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가 똑같다. '그건 인간의 잘못이지, 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목사님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을 보면 교회를 다닐 수가 없다.' 어느 견해가 옳은 것인가? 나는 개신교 목회자를 맹종하는 신도들의 이러한 성향이 바로 종교 집단의 타락과 부패를 방조내지 종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착한 남자가 폭력 조직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폭력을 싫어하고 남의 돈을 갈취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여기어 그러한 조직의 행동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외면하였다. 그렇다면 그 남자에게는 죄가 없는 것인가? 아니다 그 남자도 범죄자이다. 왜냐하면 범죄 집단에 가입하였고, 가입함으로써 그 집단의 세를 불려주었기 때문이다. 또 물질적 정신적으로 그 범죄 집단에 자기도 모르게 기여를 하였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일반 신도들이 종교 집단 내에서 종교가 아니라 신앙에만 천착하는 성향은 결과적으로 종교의 부패와 타락과 독선을 종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들의 헌금과 기여와 봉사가 종교 집단 내의 암세포를 증식시키는 자양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 개신교도들의 무관심한(?) 맹종과 침묵이 종교인들의 악행과 오만과 타락의 가장 큰 배경이 되고 있음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모 방송국 토론 프로에서 한 패널이 현재 대한민국이 해외 봉사(선교) 2위의 대국이 된 것은 젊은이들의 실업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촌철살인의 의견을 내놓았다. 뭐 낀 넘이 성낸다고 교회측 패널은 그 말에 뒤가 쑤셨는지, 말도 안 된다는 반박에만 여념이 없었다. 지금 많은 개신교 선교론자들이 개신교 지도자들의 기업 논리에 의거 해외 선교를 장려하고 있는데도, 어리석은 신도들만 사명감과 봉사라는 단어에 속아 놀아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봉사가 곧 선교이지, 선교가 곧 봉사는 아니다. '믿어라'가 아니라 '사랑합니다, 아파합니다, 그래서 돕겠습니다'를 먼저 말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려면 건전한 소비자들이 단합하여 거품이 빠질 때까지 구매를 미루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이러한 심적인 단결이 현재 부동산 거품을 실제로 붕괴시키고 있다. 마찬가지이다. 종교의 거품과 부패가 없어지려면 종교를 통해 이득을 구하고 권력을 구하는 자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종교 집단에 현혹되거나 참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논리는 대한민국 교회의 논리일 뿐이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종교적 책임이 대한민국의 개신교 신도들에게 더 무겁게 요구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나를 포함한 많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종교 집단의 부패상을 자각하였고, 그래서 부패한 종교 집단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기여를 중지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 집단 내에서 신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해외 선교 확대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지만) 덧붙여, 이러한 종교적 현상이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도를 더해 가는 개신교도에 대한 사회적 증오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2차 대전 당시 나찌의 유대인에 대한 증오 확대와 차별과 학살은 연합군에 속해 있던 여타 유럽 국가들로부터도 심적인 동조를 얻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이 유대인들의 옷에 육각성을 박음질 할 때도 여타 유럽 국가들은 바라보고만 있었다. 유럽인들의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증오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독일과 다른 나라들이 적이 된 것은 유대인 때문이 아니라 독일의 유럽 지배 야욕 때문이었을 뿐이다. 왜 유럽인들은 유대인을 증오하였는가? 유대인들은 유럽 각국에 얹혀 살면서도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고수하였다. 자신들이 속한 터전과 동화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였다.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였으면서도,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핍박받고 차별받는다는 피해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럽 사회의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인 기여와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였다. 다른 민족에 대한 배려와 크리스트교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유럽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의 뿌리가 유대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유대인을 종교적 장자(長子)로 선택하였다는 구약의 정언명제로 인해 기독교 사회 유럽은 유대인을 미워하면서도 쫓아내거나 죽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2천 년 동안의 이러한 잠재적인 증오에 대해 나찌는 그저 불을 붙였을 뿐이었다. 물론 유럽인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과 미움이 전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유럽인들이 유대인들을 환대하고 포용하였다면 유대인들의 사회적 참여도 높았을 것이다. ( 건전하고 양심적인 개신교인도 꽤 있습니다. 비개신교인님들도 신앙과 신성 자체를 몰아붙이는 것은 자제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야 개신교인들도 더 열린 마음으로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개신교도들이 사회적인 책임과 일반적인 사회 규범에 민감하였다면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고 무관심해지지 않았을 일이다. 국민들은 개신교도 역시 같은 국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저 참아주고 모른 척 해 주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지난 일이고 이제 고름은 터져버렸다. 그러니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는 그 누구도 공개석상에서 유대인을 비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여전히 홀로코스트만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팔레스타인 말살에 대해서는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대한민국 개신교도들은 여전히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절대성만을 말한다. 대한민국 일반 개신교도들이 이제 생각 뿐만 아니라 행동에서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많이 신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 나의 현실, 나의 신앙, 나의 행복, 나의 부유함에 대한 시선을 우리의 현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행복, 우리의 부유함으로 넓혀야 한다. 기독교가 부당하게 비난받고 공격받는다는 피해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개신교 중심의 사회가 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개신교 스스로 '나'라는 껍데기를 깨고 '너', '우리', '책임'에 대해 진지해 질 때 대한민국 사회의 개신교에 대한 증오와 반감은 사라질 수 있다. 비겁하게 신도들의 뒤에 숨어 꼭둑각시 놀음만 일삼는 개신교 지도자들은 참된 목회자가 아니다. 그들은 종교를 이용해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구차하게 연명해 나가려는 바라새인들이다. 더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점에 각성하고 참회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천국의 열쇠(The key of the kingdom)는 달콤한 허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뇌하는 양심 속에 있다.

- 탈레반과의 인질 석방 교섭 과정에서 현찰을 직접 전달했다는 여론의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실제로 돈을 건넸다고 하더라도, 정부로서는 절대로 이를 대놓고 공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 측 역시 같은 방법을 써야 합니다. 공개적인 구상권 행사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가기 전에, 구상에 대한 보상의 형태가 아니라 참회의 형태로 정부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거나 세금(목회자 납세 포함)의 형식으로 국가와 국민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합니다. -

 <누구세호>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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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토론방은 아프칸 사태에 편승, 일반인의 개신교에 대한 분노의 표시와
반전을 시도하려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강도 높은 반박,반문,해명의 표시가
조회,신고,댓글로 넘쳐나면서 관심,흥미는 물론 긴장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분노의 글이 오르는 건,
어느날 갑자기 개신교인에게만 주문하기 시작한 고도의 윤리수준이 아니라,
예로부터 신자들은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하는 절제가 일상이었기 때문으로,
편견이나 조건 없이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아프칸 사태를 접하더라도,
더 이상, 교인들 반이라도 닮아라, 교인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 죄가 많아
난 교회 못 간다 등, 과거 윤리의 표본이 이젠 실종됐다는 탄식의 목소리다.

무엇이 문제인가?

신을 믿지 않는 자의 입장에서, 개신교와 개신교인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서,
교리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사회 일원으로서 상식수준의 지적을 한다면,

첫 째, 교인에게까지 포용력이 없다는 건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늘 이기심의 반면에 자리하는 포용력은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의 등대이며,
어느 정도까지 포용해야 하는지는 신의 뜻을 따르는 신앙인이 본보기이며,
개신교인이야말로 가장 쉽게, 가까이에서, 편안히 만날 수 있는 탓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리에 따라 종파 외 사람을 편안히 사탄으로 보는 사이,
그들의 사탄들은 왕따도 되고, 소외인도 되고, 묻지마 범죄인도 될 수 있다.

둘 째, 개신교에 절제하는 성직자가 드물다는 것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욕심을 과감하게 버리고 혹독하게 자기를 관리하며 속물근성을 멀리하는 일.
목사가 주지스님이나 신부에 비하여 속물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건
결혼관,사생활,교회자금관리,소득수준,사회공동체의식 등 여러가지 지표에서
더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내 놓을 만한 상징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셋 째, 개신교가 교리를 반사회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성경,교리를 신자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하려고 시도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가 오산리 유적에서도 드러났듯 8,000여년간 우리들과 함께 생멸과
애환을 거듭하면서 우리만의 색깔로 분신처럼 응축된 언어,사상,전통,관습이
정통성의 바탕이 되어, 일부 비효율, 비과학, 타성이라는 헛점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정과 한을 공유하면서, 네 일을 내 일처럼 함께해 온 민족이기 때문이다.
성경,교리를 앞세워 그 정통성을 훼손하려 들면 본능적으로 저항하게 마련이고,
저항이 받아 들여 지지 않으면 곧 피차가 극단 대립으로 쉽게 치닫기 때문이다.

넷 째, 한국적 기독교의 색깔 자체가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여러 면에서 다른 나라와 달라 한국적 기독교라 할 수 있는데,
같은 교리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기독교가 그 색채를 달리 하고 있다는 것은,
교회 다르고 사회 다른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개신교, 사회로부터 사랑과
칭송을 받는 개신교상을 정립하기 위해 교리를 합리적으로 적용해도 되는데
개신교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다섯 째, 사회가 공인하는 전문 교직자가 드문 것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희대의 성스러운 목사, 사랑을 신과 같이 하는 목사가 없다고 믿는 경우이다.
그렇게 많은 교회, 그렇게 좋은 여건, 그렇게 많은 목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신부,수녀,승려가 되려는 자는 세속을 떠나서 상당한 기간을 자신과 싸운다.
그 만큼 자신만을 돌아보며 자기 체질을 선하게 개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만 선행을 몸에 익히려면 고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며,
독신수행 조차도 마다 않으며 초심을 유지하며 자신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기독교감리회가 교역자선발고시를 최초로 시행한다니 만시지탄,
목사 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로 어려워야 할 것이나, 아직도 그런 징후는 없다.

여섯 째, 제도와 사회질서를 경시하는 개신교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신앙은 법과 관습과 사회상규와 관행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분쟁과 혼란을
도덕,양심,윤리,정치,여론과 함께 명쾌하게 조정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개신교가 법,관습,사회상규,관행을 무시하는 예가 허다한 것 자체가 독선이며,
교리에 따랐을 뿐이라거나, 일부라고 하는 건 핑게이자, 비겁자들의 변이다.
일반 논객 상당수가 욕설을 섞어가며 강도 높게 비난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고,
개신교 입장에서는 아프칸 사태의 본말이 전도됐다고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끝으로, 책임의식과 정화의지가 없는 개신교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종교적행위를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와중에서 기본권은 침해하지 않았는지,
법과 제도는 지켰는지, 정서에 반하지는 않았는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하지는 않았는지, 필요 없는 도움을 준 건 아닌지,
그렇듯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얼마든지 역기능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는 개신교의 난맥상에 집착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정리한 대상을 시급히 정화하여 신뢰부터 회복하여야 된다고 본다.
아프칸사태의 추위를 더 지켜본 이 후에 시작해도 된다는 명분, 전혀 없으며,
천주교, 불교 수준으로 만이라도 정화하라는 것이 일반인의 간절한 요구이다.

이 모두를 외면할 건가?
재앙을 바랄 리 있느냐 우기면서?
정의가 밥 먹여 주냐면서?
너나 잘 하라고?
독선,오만,부패,방만,탈선,범죄하면 쉽게 연상되는,
물 타는 모르쇠 개신교.
미안하지만 아직 개신교는 종교가 아니다, 절대로.
다행히 종교의 반열에 오를 기회 만큼은 남아 있다.
답답하지만 그게 다행일 뿐이다.

<치매사오정>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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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하면 좋다고 한다.
마약을 파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마약 중독자인
경우가 많다.
특히 그들은 클럽등을 배회하며 마약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이거 한번 해 보시면 천국에 간 기분이 들겁니다."
또한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은 명동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렇게 얘기한다.
"주님을 믿으시면 천국에 갈겁니다."

둘째, 빠져들기 시작하면 그에 대한 댓가를 더욱 요구하게 된다.
마약에 손을 대게 되면 더욱 자주 마약을 원하게 된다.
그런 약점을 파고들어 마약거래상들은 처음에는 싼 값에
마약을 제공하지만 중독이 점점 심해질 수록 더욱 높은 가격을 부르게 된다.
또한 교회 목사들도 처음엔 천원이라도 괜찮다고 하지만
교회를 오래 다니게 될 수록 즉 신도들의 신앙심이 커질 수록
그 신앙심에 대한 댓가인 헌금의 액수를 더욱 늘리게 된다.

셋째, 눈에 뵈는게 없어진다.
마약을 하게되면 극한의 환각상태에서 자신의 의식이 떠돌게 된다.
그리고 중추신경의 억제와 말초신경의 과부하로 인해 도덕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이는 곧 반사회적 행동인 범죄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또한 교회에 오래 빠지게 될 수록 목사의 궤변에 의한 환각상태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비판과 지성이라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며
자신들과 다른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없애버려야 한다는 아드레날린을 자주 분비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아드레날린의 분비는 단군상 훼손, 사찰방화, 문화재 훼손이라는
반사회적인 범죄로 이어진다.

넷째, 가족도 없다.
중증 이상의 마약중독자들은 마약이라는 것을 사기 위해
부모, 형제들에게 돈을 갈취하거나 심지어는 존속살인 또한 서슴치 않는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비뚤어져 버린 신앙심으로 인해
부모와 가족들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으며
교회에 바칠 헌금이 모자란 경우엔 부모와 가족들에게 현금을 갈취하기도 한다.
또한 가족간의 마찰로 인해 우발적으로 존속살인을 행하기도 한다.
또한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마귀가 들었다는 핑계로 안수기도를 하여
아이를 죽여 뒷산에 묻어버린 부모도 있다.

다섯째, 종류가 다양하다.
마약이라고 해서 대마 한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엑스터시 등등 그 종류만 해도 수백가지가 넘는다.
또한 한국의 개신교 종파도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종파가 생기며 사라지기도 한다.

여섯째, 해외원정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인 마약을 규제를 받지않고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일부 중증 마약중독자들은 마약이 합법화 된 나라나
주로 우리나라로 마약을 수출하는 나라로 여행을 간다.
또한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마약인 종교를 퍼뜨리기 위해
이슬람 원칙주의 국가나 아프리카 등지로 자주 선교여행을 떠난다.
틀린점은 마약중독자들은 자신들이 마약을 하기 위해서 가지만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마약을 해외 사람들에게도 권하기 위해 찾아 간다는 것이다.

일곱째, 거울을 보려하지 않는다.
마약을 하게 되면 체중감소, 안구돌출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자신의 모습을 아주 초췌하게 만든다.
마약 중독자들은 거울을 보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초췌하고 볼품없이 변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갉아먹는 마약이라는 것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인들도 거울을 보려 하지 않는다.
즉 남들이 보기에 그들이 추하게 보인대도
그들은 그들만의 어긋난 신앙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기독교인들에게 반성이라는 것은 죽어도 바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shagrath>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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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죄지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은 우리를 죽였고 모든 문화재를 약탈해갔고

민족을 말살하려 했습니다..기독교도 마찮가집니다..

님은 아니라고 말씀 하실진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단군을 부정하고 부처상이나 절만봐도 속에

부아가 치밀어 올라하니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싫어

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기독교를 싫어할뿐입니다.

개신교로인해 파괴되는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 이고

해외에서 추락해가는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이고

민족을 말살하려는 개신교의 만행을 보다보다 못해

이러는 것일 뿐입니다..



일년에 80여개의 단군상 목을 배는 개신교인들

그리고 3000여번 절에 방화를한 개신교인들

그리고 한국최초의 현대식건물이자 사적252호인 한국 최초의 성당에

불을 지른 개신교들에게서 더이상 문화재가 파괴되지 안고

종교가 정치에 관섭하지 안고 더나아가서 이땅에서 개신교가

사라지길 바라며 악에 받이고 분하고 같은 민족이면서도

일제시대 우리민족을 말살하려 했던 일본 쪽바리들을 너무나도 닮은

개신교인들이 싫을 뿐입니다..

인도에는 흰두교 사원이 어울리고 바그다드에는 이슬람 사원이

어울릴 뿐입니다..

같은 이치로 위의 예로 문화재를 파괴하고 민족과 문화를 말살하려는

개신교는 우리나라와 어울리지 안습니다..

비개신교인이 봤을땐 너무나도 느끼하고 매스껍고 사이비스러워 보이는

종교일 뿐입니다..

일본사람중에서도 착한 사람 많습니다..

개신교도 중에서도 착한 사람 많겟지요..

그러나 공통점은 용서할수 없는 죄를 저지른것과 민족을 말살하려했던 과거와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란 점입니다..

아마 더 심해질것입니다..

더심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일년에 80여개나 잘리는 단군상과

3000여개나 불태운 우리의 문화 유산이 복원 되고

천년이 넘는 불상을 도끼로 깨부수며 2만신도가 모여서

사찰아 무너져라고 주문을 외고 한국최초의 현대식 건물

사적252호이자 우리의 문화재 XX성당을 불태운게

복원 되는건 아니지만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끝까지 개신교를 이해할수없고 끝까지 개신교는 용납하지 안을 것입니다..


단... 개신교가 정치와 언론에서 손을 때고

지금까지 지은 죄를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며

배타성과 이기심을 버린리고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인정한다면 용서 한번쯤고려 해볼것입니다..

<매너교본>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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