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토론방은 아프칸 사태에 편승, 일반인의 개신교에 대한 분노의 표시와
반전을 시도하려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강도 높은 반박,반문,해명의 표시가
조회,신고,댓글로 넘쳐나면서 관심,흥미는 물론 긴장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분노의 글이 오르는 건,
어느날 갑자기 개신교인에게만 주문하기 시작한 고도의 윤리수준이 아니라,
예로부터 신자들은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하는 절제가 일상이었기 때문으로,
편견이나 조건 없이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아프칸 사태를 접하더라도,
더 이상, 교인들 반이라도 닮아라, 교인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 죄가 많아
난 교회 못 간다 등, 과거 윤리의 표본이 이젠 실종됐다는 탄식의 목소리다.

무엇이 문제인가?

신을 믿지 않는 자의 입장에서, 개신교와 개신교인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서,
교리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사회 일원으로서 상식수준의 지적을 한다면,

첫 째, 교인에게까지 포용력이 없다는 건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늘 이기심의 반면에 자리하는 포용력은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의 등대이며,
어느 정도까지 포용해야 하는지는 신의 뜻을 따르는 신앙인이 본보기이며,
개신교인이야말로 가장 쉽게, 가까이에서, 편안히 만날 수 있는 탓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리에 따라 종파 외 사람을 편안히 사탄으로 보는 사이,
그들의 사탄들은 왕따도 되고, 소외인도 되고, 묻지마 범죄인도 될 수 있다.

둘 째, 개신교에 절제하는 성직자가 드물다는 것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욕심을 과감하게 버리고 혹독하게 자기를 관리하며 속물근성을 멀리하는 일.
목사가 주지스님이나 신부에 비하여 속물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건
결혼관,사생활,교회자금관리,소득수준,사회공동체의식 등 여러가지 지표에서
더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내 놓을 만한 상징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셋 째, 개신교가 교리를 반사회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성경,교리를 신자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하려고 시도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가 오산리 유적에서도 드러났듯 8,000여년간 우리들과 함께 생멸과
애환을 거듭하면서 우리만의 색깔로 분신처럼 응축된 언어,사상,전통,관습이
정통성의 바탕이 되어, 일부 비효율, 비과학, 타성이라는 헛점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정과 한을 공유하면서, 네 일을 내 일처럼 함께해 온 민족이기 때문이다.
성경,교리를 앞세워 그 정통성을 훼손하려 들면 본능적으로 저항하게 마련이고,
저항이 받아 들여 지지 않으면 곧 피차가 극단 대립으로 쉽게 치닫기 때문이다.

넷 째, 한국적 기독교의 색깔 자체가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여러 면에서 다른 나라와 달라 한국적 기독교라 할 수 있는데,
같은 교리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기독교가 그 색채를 달리 하고 있다는 것은,
교회 다르고 사회 다른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개신교, 사회로부터 사랑과
칭송을 받는 개신교상을 정립하기 위해 교리를 합리적으로 적용해도 되는데
개신교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다섯 째, 사회가 공인하는 전문 교직자가 드문 것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희대의 성스러운 목사, 사랑을 신과 같이 하는 목사가 없다고 믿는 경우이다.
그렇게 많은 교회, 그렇게 좋은 여건, 그렇게 많은 목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신부,수녀,승려가 되려는 자는 세속을 떠나서 상당한 기간을 자신과 싸운다.
그 만큼 자신만을 돌아보며 자기 체질을 선하게 개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고,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만 선행을 몸에 익히려면 고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며,
독신수행 조차도 마다 않으며 초심을 유지하며 자신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기독교감리회가 교역자선발고시를 최초로 시행한다니 만시지탄,
목사 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로 어려워야 할 것이나, 아직도 그런 징후는 없다.

여섯 째, 제도와 사회질서를 경시하는 개신교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신앙은 법과 관습과 사회상규와 관행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분쟁과 혼란을
도덕,양심,윤리,정치,여론과 함께 명쾌하게 조정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개신교가 법,관습,사회상규,관행을 무시하는 예가 허다한 것 자체가 독선이며,
교리에 따랐을 뿐이라거나, 일부라고 하는 건 핑게이자, 비겁자들의 변이다.
일반 논객 상당수가 욕설을 섞어가며 강도 높게 비난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고,
개신교 입장에서는 아프칸 사태의 본말이 전도됐다고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끝으로, 책임의식과 정화의지가 없는 개신교도 우리 사회의 재앙이다.

종교적행위를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와중에서 기본권은 침해하지 않았는지,
법과 제도는 지켰는지, 정서에 반하지는 않았는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하지는 않았는지, 필요 없는 도움을 준 건 아닌지,
그렇듯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얼마든지 역기능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는 개신교의 난맥상에 집착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정리한 대상을 시급히 정화하여 신뢰부터 회복하여야 된다고 본다.
아프칸사태의 추위를 더 지켜본 이 후에 시작해도 된다는 명분, 전혀 없으며,
천주교, 불교 수준으로 만이라도 정화하라는 것이 일반인의 간절한 요구이다.

이 모두를 외면할 건가?
재앙을 바랄 리 있느냐 우기면서?
정의가 밥 먹여 주냐면서?
너나 잘 하라고?
독선,오만,부패,방만,탈선,범죄하면 쉽게 연상되는,
물 타는 모르쇠 개신교.
미안하지만 아직 개신교는 종교가 아니다, 절대로.
다행히 종교의 반열에 오를 기회 만큼은 남아 있다.
답답하지만 그게 다행일 뿐이다.

<치매사오정>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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