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하면 좋다고 한다.
마약을 파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마약 중독자인
경우가 많다.
특히 그들은 클럽등을 배회하며 마약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이거 한번 해 보시면 천국에 간 기분이 들겁니다."
또한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은 명동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렇게 얘기한다.
"주님을 믿으시면 천국에 갈겁니다."

둘째, 빠져들기 시작하면 그에 대한 댓가를 더욱 요구하게 된다.
마약에 손을 대게 되면 더욱 자주 마약을 원하게 된다.
그런 약점을 파고들어 마약거래상들은 처음에는 싼 값에
마약을 제공하지만 중독이 점점 심해질 수록 더욱 높은 가격을 부르게 된다.
또한 교회 목사들도 처음엔 천원이라도 괜찮다고 하지만
교회를 오래 다니게 될 수록 즉 신도들의 신앙심이 커질 수록
그 신앙심에 대한 댓가인 헌금의 액수를 더욱 늘리게 된다.

셋째, 눈에 뵈는게 없어진다.
마약을 하게되면 극한의 환각상태에서 자신의 의식이 떠돌게 된다.
그리고 중추신경의 억제와 말초신경의 과부하로 인해 도덕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이는 곧 반사회적 행동인 범죄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또한 교회에 오래 빠지게 될 수록 목사의 궤변에 의한 환각상태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비판과 지성이라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며
자신들과 다른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없애버려야 한다는 아드레날린을 자주 분비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아드레날린의 분비는 단군상 훼손, 사찰방화, 문화재 훼손이라는
반사회적인 범죄로 이어진다.

넷째, 가족도 없다.
중증 이상의 마약중독자들은 마약이라는 것을 사기 위해
부모, 형제들에게 돈을 갈취하거나 심지어는 존속살인 또한 서슴치 않는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비뚤어져 버린 신앙심으로 인해
부모와 가족들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으며
교회에 바칠 헌금이 모자란 경우엔 부모와 가족들에게 현금을 갈취하기도 한다.
또한 가족간의 마찰로 인해 우발적으로 존속살인을 행하기도 한다.
또한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마귀가 들었다는 핑계로 안수기도를 하여
아이를 죽여 뒷산에 묻어버린 부모도 있다.

다섯째, 종류가 다양하다.
마약이라고 해서 대마 한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엑스터시 등등 그 종류만 해도 수백가지가 넘는다.
또한 한국의 개신교 종파도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종파가 생기며 사라지기도 한다.

여섯째, 해외원정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인 마약을 규제를 받지않고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일부 중증 마약중독자들은 마약이 합법화 된 나라나
주로 우리나라로 마약을 수출하는 나라로 여행을 간다.
또한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마약인 종교를 퍼뜨리기 위해
이슬람 원칙주의 국가나 아프리카 등지로 자주 선교여행을 떠난다.
틀린점은 마약중독자들은 자신들이 마약을 하기 위해서 가지만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마약을 해외 사람들에게도 권하기 위해 찾아 간다는 것이다.

일곱째, 거울을 보려하지 않는다.
마약을 하게 되면 체중감소, 안구돌출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자신의 모습을 아주 초췌하게 만든다.
마약 중독자들은 거울을 보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초췌하고 볼품없이 변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갉아먹는 마약이라는 것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인들도 거울을 보려 하지 않는다.
즉 남들이 보기에 그들이 추하게 보인대도
그들은 그들만의 어긋난 신앙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기독교인들에게 반성이라는 것은 죽어도 바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shagrath>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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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주류에 끼려면 학위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일단 학위가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학위가 없는 사람들은 기득권층을 형성한 사람들이 거의 학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그대로 인정한다. 개인이 학력사회를 능력사회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 역사에서 신분의 제한을 철폐하고 인재를 등용하자고 한 주장은 번번이 실패했다.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임춘, 조선의 허균 등의 견해가 그렇다. 정약용이나 박지원의 의견도 제도권에서 외면당했다. 우리 역사는 혁신자를 탄압해온 과정이다.

이런 사회에서 학위는 없지만 기득권층에 끼려는 사람은 편법을 동원한다. 그들은 학위를 사거나 가짜 학위를 만들거나 논문을 대필하게 하거나 또는 남의 논문을 베껴 학위를 딴다. 남에게 인정받고 상위층에 들어가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사회 제도를 고치려다가 개인이 희생되는 쪽보다는 이 길을 선택한 사람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능력보다 학위가 중시되기 때문에 생긴 폐단은 많다. 한국의 고졸자는 85%가량이 대학에 간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 인플레이다. 학업기가 기니까 자연히 입사연령, 입직연령, 결혼시기가 늦어진다. 교육 부담이 커져 마침내 출산 자체를 꺼린다. 한국 교육보다 외국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 사서 유학과 연수가 유행한다. 10개월 연수에 1500만원 가량이 드는데도 대학생은 누구나 연수를 가려 한다. 대졸자가 양산되어 인력구조가 왜곡되고, 대학교육은 교양교육이나 취업교육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순수로 포장한 대학교육은 취업에 별무소용이어서 대학에서도 사교육이 유행한다. 그래서 학위는 등록금 영수증이란 말이 생겼다. 대학원교육도 학력저하가 심각하다. 대학원생 중에는 자기 이름을 한자로 못쓰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공부보다 학위가 중요해지면서 생긴 일이다.

학위는 공부할 분야를 정하고 학문능력을 키우는 데 필요하다. 박사학위도 전문영역을 정해 스스로 전문분야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자격증에 불과하다. 그나마 한국의 박사는 자체적 연구 능력을 잘 발휘하지 못한다. 학위 과정에서 그런 능력을 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위가 능력을 입증하는 증서가 결코 아니다. 이래서 학위 없는 사람한테 학위보유자가 밀리는 사태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위사회를 극복하고 능력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은 그 점에서 대학을 앞선다. 각종 취업에서 학위로 지원을 제한하는 일부터 폐지해야 한다. 개인의 능력을 학위 말고도 검증할 수 있는 인사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인력채용 분야를 보강하고 인력 채용 방법을 다양화해야 한다. 같이 고시를 통과한 사람이라면 고졸자가 서울대 졸업생보다 더 실력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중졸자 판사보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를 더 높이 평가한다. 좁은 땅에서 여자를 제외하고, 어떤 지역사람은 감점을 주고, 지방 대학 졸업생 원서를 빼내고 어떻게 좋은 인재를 뽑겠는가.

학위가 없는 사람들도 학위 없다고 학위 있는 자들 앞에서 위축될 것 없다. 가짜 학위자들이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정식 학위가 별로 소용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은 학위가 인사에서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면도 있다. 지금은 학위의 효용도 몇 년밖에 안된다. 지식의 유효기와 지식반감기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제도권 안팎이 무너져 지식인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매우 많다. 인터넷이나 책을 통하면 세계의 석학과 만날 수 있다. 학교가 더 이상 정보나 지식의 보고가 아니다. 자기 내공을 평생 쌓으면 학위야 한낱 종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학위없이 산다는 것, 그것은 고달픈 여정이다.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고등학교 졸업장을 움켜쥐고 대학에 도전한다고 하는 나라에서 학위 무용론을 펴는 것이 어쩌면 공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위 가진 자들의 실력을 무조건 인정하고 학위가 없다고 푸념한다고 자신의 경쟁력이 올라가지 않는다. 능력을 기르려면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학위 가진 자를 능가할 날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의식과 행동이 변해야 사회를 혁신할 수 있다. 학위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국가와 학위 없는 사람이 앞장서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득권을 스스로 반납한 예를 우리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물빛>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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