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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6 [핫이슈] 한국에서 학위없이 산다는게...
한국에서 주류에 끼려면 학위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일단 학위가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학위가 없는 사람들은 기득권층을 형성한 사람들이 거의 학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그대로 인정한다. 개인이 학력사회를 능력사회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 역사에서 신분의 제한을 철폐하고 인재를 등용하자고 한 주장은 번번이 실패했다.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임춘, 조선의 허균 등의 견해가 그렇다. 정약용이나 박지원의 의견도 제도권에서 외면당했다. 우리 역사는 혁신자를 탄압해온 과정이다.

이런 사회에서 학위는 없지만 기득권층에 끼려는 사람은 편법을 동원한다. 그들은 학위를 사거나 가짜 학위를 만들거나 논문을 대필하게 하거나 또는 남의 논문을 베껴 학위를 딴다. 남에게 인정받고 상위층에 들어가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사회 제도를 고치려다가 개인이 희생되는 쪽보다는 이 길을 선택한 사람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능력보다 학위가 중시되기 때문에 생긴 폐단은 많다. 한국의 고졸자는 85%가량이 대학에 간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 인플레이다. 학업기가 기니까 자연히 입사연령, 입직연령, 결혼시기가 늦어진다. 교육 부담이 커져 마침내 출산 자체를 꺼린다. 한국 교육보다 외국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 사서 유학과 연수가 유행한다. 10개월 연수에 1500만원 가량이 드는데도 대학생은 누구나 연수를 가려 한다. 대졸자가 양산되어 인력구조가 왜곡되고, 대학교육은 교양교육이나 취업교육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순수로 포장한 대학교육은 취업에 별무소용이어서 대학에서도 사교육이 유행한다. 그래서 학위는 등록금 영수증이란 말이 생겼다. 대학원교육도 학력저하가 심각하다. 대학원생 중에는 자기 이름을 한자로 못쓰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공부보다 학위가 중요해지면서 생긴 일이다.

학위는 공부할 분야를 정하고 학문능력을 키우는 데 필요하다. 박사학위도 전문영역을 정해 스스로 전문분야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자격증에 불과하다. 그나마 한국의 박사는 자체적 연구 능력을 잘 발휘하지 못한다. 학위 과정에서 그런 능력을 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위가 능력을 입증하는 증서가 결코 아니다. 이래서 학위 없는 사람한테 학위보유자가 밀리는 사태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위사회를 극복하고 능력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은 그 점에서 대학을 앞선다. 각종 취업에서 학위로 지원을 제한하는 일부터 폐지해야 한다. 개인의 능력을 학위 말고도 검증할 수 있는 인사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인력채용 분야를 보강하고 인력 채용 방법을 다양화해야 한다. 같이 고시를 통과한 사람이라면 고졸자가 서울대 졸업생보다 더 실력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중졸자 판사보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를 더 높이 평가한다. 좁은 땅에서 여자를 제외하고, 어떤 지역사람은 감점을 주고, 지방 대학 졸업생 원서를 빼내고 어떻게 좋은 인재를 뽑겠는가.

학위가 없는 사람들도 학위 없다고 학위 있는 자들 앞에서 위축될 것 없다. 가짜 학위자들이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정식 학위가 별로 소용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은 학위가 인사에서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면도 있다. 지금은 학위의 효용도 몇 년밖에 안된다. 지식의 유효기와 지식반감기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제도권 안팎이 무너져 지식인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매우 많다. 인터넷이나 책을 통하면 세계의 석학과 만날 수 있다. 학교가 더 이상 정보나 지식의 보고가 아니다. 자기 내공을 평생 쌓으면 학위야 한낱 종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학위없이 산다는 것, 그것은 고달픈 여정이다.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고등학교 졸업장을 움켜쥐고 대학에 도전한다고 하는 나라에서 학위 무용론을 펴는 것이 어쩌면 공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위 가진 자들의 실력을 무조건 인정하고 학위가 없다고 푸념한다고 자신의 경쟁력이 올라가지 않는다. 능력을 기르려면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학위 가진 자를 능가할 날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의식과 행동이 변해야 사회를 혁신할 수 있다. 학위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국가와 학위 없는 사람이 앞장서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득권을 스스로 반납한 예를 우리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물빛>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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