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가 지나고 하루가 다르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머지 않아 우리에게 익숙한 세밑 풍경, 특히 늘 우리내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 합니다.

 

어린 꼬마가 천원 한 장을 자선냄비에 집어넣고는 부끄러운 듯 종종걸음으로 부모에게 달려가는 모습, 해마다 봉투 속에 거액을 담아 자선냄비에 넣는 익명의 거액 기부자에 대한 이야기 등 구세군의 자선냄비 활동으로 인해 삭막한 사회생활 속에서도 우리 모두는 베품에 대한 기쁨이 다른 어떤 기쁨에 못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연말연시의 구세군 자선냄비는 단순히 주변의 불우한 이웃에게 도움을 준다는 결과론적 목적 이외에 이 사회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 넣는 사랑의 봉사활동인 것 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구세군의 자선냄비활동을 홍보하고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보아왔기에 늘 따뜻한 눈길로만 바라보았던 구세군에 대해 최근 인식을 달리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내년이면 구세군이 우리나라에 본격 도입된 지 100년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100년의 역사 동안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린 구세군은 기독교의 다른 교파와 달리 공격적인 전도를 통한 교세확장이 아닌 자선냄비 모금활동 등과 같이 주로 한국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위한 복지사업을 하다 보니 종교의 종류와 관계없이 한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그러면서 차츰 교세가 확장되었다고 봅니다.

 

그러한 구세군에 대해 제가 인식을 달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은 다름아닌 추석연휴를 시작하는 지난 주 금요일 저녁의 사건 때문입니다.

 

모처럼만의 연휴에 고교동창모임이 있어 서대문로터리 근처로 나갔습니다.

여러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했던 모임을 마치고 인근에 사는 친구와 함께 충정로 전철역으로 가던 중 아쉬움에 충정로 역 근처의 아주 조그맣고 허름한 치킨 집에 들러 호프 한잔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는 호프집이었는데 연휴전이라 그런지 손님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친구와 함께 주인 할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대화 중 저도 모르게 아니 어쩌면 그럴 수가!!! 라는 말이 튀어 나오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말씀으로 그 치킨 집을 작년 3월 인수한 이후 약 1년 반을 혼자서 운영하며 아직 학생들인 손주 둘을 키우며 살고 계시는데 작년 11월에 구세군에서 치킨 집을 포함 인근 점포를 사들였다고 합니다.

구세군에서 혹 세입자들의 반발이 있을 것을 우려해 비밀리에 땅 주인들을 만나 평당 3천만원에 인수를 했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권리금을 주고 새로 시설을 하여 들어온 지 채 반년밖에 안된 싯점에.

 

제가 알기론 임대차 보호법에 의하면 임대계약 중 임대인이 소유 부동산을 매각한다면 이 사실을 임차인에게 알려야 하며 양수자는 양도인으로부터 임차인과의 계약에 대한 부분을 승계 받도록 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경우 입주하고 7개월 만에 건물주가 바뀌었고 그런 사실을 전혀 통보받지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사실을 안 할머니는 그래도 민간업자가 땅을 산 것이 아니라 불우한 소외계층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구세군에서 인수한 것이라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 안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올3월 구세군에서 자신들의 본관을 짓는다고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였답니다.

정확히 할머니가 입주하고 1년이 되는 달에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한 할머니께서는 전 건물주에게 이를 따지자 건물주는 구세군과 계약시 세입자에게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나중에 우리가 알아서 적당히 보상할 테니 그냥 모른 척 해달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구세군에서는 건물이 자기네 명의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임대계약서상 1년이 되는 싯점까지 세입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던 것 입니다.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치킨집은 제가 보기에도 버젓한 상가건물이 아니라 낡고 오래된 허름한 한옥을 부분개조 한 건물입니다.

 

그런 보잘 것 없는 건물을 매입하며 평당3000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구세군에서 가난한 세입자의 1평 값도 안 되는 시설비를 안 주려고 매매사실을 숨겼다는 행태가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가게를 비울 때 비우더라도 보증금은 물론 최소 입주 시 투자했던 권리금과 시설비를 합쳐 2천6백만원 만이라도 보상해 달라 하였더니 자신들은 임대인이라 권리금이나 시설비를 보상할 수 없다며 그냥 보증금 1000원만 돌려 주겠다고 했답니다.

 

그것도 제발로 찾아와 상의를 한 것도 아니고 매번 연로하신(올해 73세라고 합니다)할머니를 구세군 본영으로 들어와라 하였다가 바쁘니 다음에 다시 와라 하는 등 그 일로 수차례 호출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부턴 구세군 측 사람이 자기네가 사전 통지를 못한 잘못이 있으니 일부 배상해 드리겠다고 하면서 5백만원을 준다, 천만원 이상은 안된다”하였다가는 또 말을 바꾸어 소송비용이 많이 들텐데 법정에서 만날 수 있겠냐?, "재개발사업이라 법적 하자가 없다" 등 법을 운운하며 겁을 주는가 하면 호프집 시설비로 돈 벌려 하느냐” 등의 모욕스런 언사를 행하며 할머니를 서서히 지치게 하였나 봅니다.

 

심지어 구세군 본영의 목사(구세군 명칭은 잘 모르겠음)라는 사람이 할머니께 목청 높여 삿대질까지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이런 일을 겪으시며 당한 심한 모욕감과 향후 생계걱정에 건강이 갑작스럽게 악화되셨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한 푼이라도 더 버시려는 욕심에 손주들 학교 보내고 낮부터 국수나 냉면 등을 팔기도 하셨는데 그 일이 있은 이후로는 한동안 장사를 전혀 하지 못했음은 물론 요즘에도 건강 때문에 낮에는 커녕 평일 저녁에도 장사를 못하시고 그나마 손님이 조금 있을만한 주말저녁에만 잠깐 장사를 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며 지난 반 년의 악몽같았던 시간이 떠오르시는 지 할머니께서는 초면인 저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너무 억울하고 막막한데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다 하시면서 게다가 낼 모레가 추석인데 9월30일까지 점포를 비우라고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하시며 눈물 짓는 할머니의 모습이 연휴내내 가슴속에 남아 지워지질 않더군요.

 

제가 뭔가 도와드리고 싶은데 도와드릴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는 않고 해서 추석날 보름달을 보며 할머니를 위한 기원도 드려보았습니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드려야겠다는 판단에 오늘 구세군의 양면적인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힘겨운 싸움을 벌이시고 계시는 할머님께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어 드리고자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저와 함께 충정로의 치킨집 할머니를 위해 힘을 보태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피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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